가히 와인의 계절이다. 충북 영동에선 포도축제가 오늘 개막한다. 주인은 포도지만 ‘와인트레인’에 와인만들기 등 와인이 빠지지 않는다. 지난 주말엔 경기도 광명시가 국산 와인을 모아 ‘광명동굴 대한민국 와인 페스티벌’을 열더니, 이번 주말엔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아시아 최대 규모의 국제 와인 품평회 ‘아시아와인트로피’가 열린다. 입상한 와인은 다음 주 대전무역전시관에서 열리는 ‘대전국제와인페어(대전 국제 와인&주류 전시회)’에 소개된다고 한다. 세계 7대 와인 생산국으로 성장한 중국의 와인들도 대거 출품된다니 눈길이 간다.
▷위스키나 소주 같은 독한 술은 떠돌며 사는 역동적인 이동·변혁 사회에서 즐겨 마시고, 와인이나 막걸리 같은 순한 술은 한곳에 머물러 사는 정적(靜的)인 정착·안정 사회에서 즐겨 마신다고 한다. 빅토리아 왕조의 영국 사람들이 해적들이나 마시는 독한 럼주를 선호한 건 그때가 바로 왕성한 해양식민 시대였기 때문이요, 루이 14세 왕조의 프랑스 사람들이 와인을 선호했던 것은 안정된 농경생활을 바탕으로 예술이 꽃피기 시작한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보일러메이커’, 즉 폭탄주가 등장한 것도 산업화가 진행되던 변혁기였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몽고 침략 시기에 ‘아랭이’ 술, 즉 소주를 막걸리보다 많이 마셨다 했고,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이르는 변혁기엔 소주를 많이 마셔 ‘소주도(燒酒徒)’란 불량배가 판치기까지 했다. 1960년대 들어 소주 소비량이 급증한 것도 미곡 정책에 따른 막걸리의 저질화에도 이유가 있겠으나 그때 그 시기가 도시화에 핵가족화, 산업화, 대량생산시대로 옮겨가는 변혁기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으되, 어떤 술을 즐겨 마시는지 보면 변혁시기인지, 안정시기인지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근래 들어 20도가 넘는 소주를 찾기 어렵고 와인 인구가 느는 걸 보면 우리나라도 변혁시기에서 안정시기로 접어드는 게 아닌가 싶다. 10년 전 한 광고회사가 중년을 ‘와인(WINE)세대’로 명명해 화제가 됐다. 포도주 세대가 아니라 ‘Well Integrated New Elder’세대요, 보릿고개 등 인고의 세월을 겪으며 포도주처럼 은은한 빛깔과 깊은 향기를 품은 세대라는 뜻을 담았단다. 하지만 와인이 대세인 요즘은 말 그대로 포도주세대, ‘와인세대’라 불러야 어울린다. 변혁기를 온몸으로 부대끼며 산 ‘쐬주’ 세대는 전(前) 와인세대가 되겠고…. 안순택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