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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하선] 가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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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8.24 16:45
  • 기자명 By. 충청신문

절기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엊그제가 모기 입이 삐뚤어지고, 하루에 한 뼘씩 무성하게 자라던 풀도 이제 울며 돌아선다는 처서였다. 말 그대로 여름이 그친다는 뜻이다. 처서는 땅에선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선 뭉게구름 타고 온다. 입추가 되어도 쉽게 떠나지 않던 여름도 처서를 지나면 제풀에 지쳐 서늘한 기운을 불러들인다. 밤에 문을 열어놓고 자던 집들도 베란다의 한쪽 문을 슬그머니 닫는다. 정말 간사한 것이 피부로 느껴지는 아침저녁 기온의 차이인지, 바람 몇 점에 금방 변해버리는 사람의 마음인지 모를 정도다.

▷밖에 나가면 똑같은 풍경인데도 시야가 확 넓어지는 느낌이다. 그게 바로 아직은 어제나 다름없는 초록빛 들판에서 느끼는 가을의 첫 기운이다. 시인 이형기는 “시인은 가을에 미친다”고 했다. ‘어느 시인의 대뇌 좌우반구, 그 뇌막에 퍼지기 시작한 작은 물집들’이 ‘하나 가득 알알이 익어서’ 석류처럼 벌어지기 때문이란다. 그는 ‘사람들아, 와서 그 속을 들여다 보아라’라고 뇌쇄적으로 유혹했다. “바라만 보아도/ 눈물이 날 것 같은/ 하늘이 열리고/ 산 아래 노을이 누우면/ 바람도 가는 길을 멈추고/ 숨을 죽인다….”‘(김정호 ‘고추잠자리’).

▷고추잠자리는 가을의 전령이다. 한낮 뙤약볕 아래서 한 마리의 고추잠자리를 보고 가을이 왔음을 느낀다. 고추잠자리의 ‘섹시한’ 꼬리, 풀벌레 소리로 가을이 올 거다. “공원의 작은 숲에선/ 쏟아지는 여름 풀벌레 소리 낭자하다/ 아무리 들어도 결코 음악이 될 수 없는/ 노래 될 수 없는/ 다만 제멋에 겨워 소리소리 지르는/ 풀벌레 소리가 눈치 보지 마라 주눅들지 마라/ 그저 살아라 살아라 악을 쓰며 울어댄다.”(홍윤숙 ‘풀벌레 소리’) “버려야 할 것이/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도종환 ‘단풍 드는 날’)

▷해마다 여름이 길어지고 가을이 짧아진다고 해도 처서 지나면 밤이 익는다. 도시의 생활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가끔은 들에 나가보자. 이제부터 익기 시작하는 오곡백과가 들에서도 익고 그걸 바라보는 우리들 마음속에서도 익는다. 세상살이가 온통 힘들고 어지럽다 해도 들판을 바라보며 고향을 그리는 마음처럼 이 가을 우리 모두 조금씩은 여유롭고 너그러웠으면 좋겠다. “숲길을 지나/곱게 물든 단풍잎들 속에/우리가 미처 나누지 못한/사랑이야기가 있었습니다…설렘이 있었습니다 /가을이 거기에 있었습니다….”(용혜원 ‘가을 이야기’).

안순택<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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