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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하선] 협상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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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8.23 17:33
  • 기자명 By. 충청신문

우리 옛 선비들은 ‘만고도목(萬古都目)’이라 해서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인물로 내각을 구성하는 정치놀이를 즐겼다. 현실정치에 관심이 있는 선비들이 사랑방에 모여 앉아 당면한 시대상을 토로하고 자신의 정치적 성향은 물론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지식을 자랑할 수 있는 놀이였던 것이다. 육당 최남선은 ‘역대인물전형의안(歷代人物銓衡擬案) 기인비관(其人備官) 고본(稿本)’이란 긴 제목으로 자신이 생각한 내각을 제시했는데, 총리에는 을파소(고구려)요, 육군부대신에 을지문덕(고구려), 해군부대신 이순신(조선)을 올려놓고 있다.

▷외교부대신이 서희다. 고려의 문신인 서희는 993년 거란의 소손녕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수행원 몇 명만 데리고 소손녕을 찾아가 담판을 벌여 거란군을 철수시켰다. 게다가 고구려의 옛 땅인 강동 6주를 요구해 돌려받았으니 육당뿐 아니라 역사학자들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협상 사례로 꼽는다. 그가 세치 혀로 대군을 물리친 건 송나라와 거란, 고려를 둘러싼 당시의 국제정세를 꿰뚫어 본 덕이었다. 거란의 고려 침공이 송을 치기 위한 정지작업임을 파악한 그는 송과의 관계 단절을 약속해 거란군을 물러가게 한다.

▷게다가 조정의 친송파의 반대를 누그러뜨린다는 명분으로 고구려의 옛 땅까지 돌려받았던 것이다. 로저 도슨은 ‘협상의 심리학’에서 “성공적인 협상은 심리전에서 승리하는 것”이라며 상당히 정교한 협상기법을 소개한다. 초기 협상기법으로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요구하라”거나 “최초의 제안을 먼저 받아들이지 말라”고 권고한다. 서희는 “뜰에서 절하라”는 소손녕에게 “대신끼리 만나는 자리인데 그럴 수 없다”며 짐짓 화난 기색을 보이며 숙소로 돌아와 움직이지 않았다. 자존심을 당당하게 보임으로써 심리전에서 우위를 점했던 것이다.

▷북한의 비무장지대 지뢰 도발 이후 남북의 강대강 군사적 대치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한 고위당국자 접촉이 평화의 집에서 진행됐다. 이번 협의만으로도 남북간의 급박했던 긴장 상황은 끝났다고 본다. 어느 한쪽이 먼저 총을 들 경우 비난이 몰릴 것이기 때문이다. 관심을 가는 건 그 다음이다. 이산가족 상봉, 천안함 폭침에 따른 5·24 대북제재 조치 해제,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다양한 남북 사이의 현안의 실마리가 풀릴 것이냐다. 서희의 협상력을 발휘해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는 획기적 전기가 됐으면 싶은 것이다.안순택<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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