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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하선] 사계(死計)와 오멸(五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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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8.18 18:16
  • 기자명 By. 충청신문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의 시 ‘귀천(歸天)’처럼 이승에서의 삶을 ‘아름다운 소풍’이라 여기고 죽음이라는 삶의 끄트머리에서 마치 즐거운 나들이 왔다가 떠나는 것처럼 홀가분한 기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요즘 관심을 모으는 웰다잉(well-dying)도 ‘잘 죽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한마디로 ‘품위 있는 죽음’이라 할 만한데, 인생을 화려하게 살려는 세속적인 욕심을 줄이면서 나눔을 실천하는 생활자세가 그 출발점일 것이다.

▷조선시대 사대부 같은 지식층에는 어떻게 해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맞을 수 있느냐, 하는 문화가 있었다. 이른바 ‘사계(死計)문화’인데 송나라 학자 주신중(朱新仲)의 인생 오계론(五計論) 곧 생계(生計), 신계(身計), 가계(家計), 노계(老計), 사계(死計)의 영향을 받아 ‘오멸(五滅)’이라는 노후 철학을 지켰던 것이다. 그 첫째가 삶에 미련을 잡아두는 재물을 극소화해야 죽음이 편안해진다는 멸재(滅財)요, 그 둘이 살아오는 동안 남에게 산 크고 작은 원한을 애써 풀어버릴수록 죽음이 편안해 진다는 멸원(滅怨)이다.

▷셋이 남에게 진 물질적·정신적 부채를 청산하는 멸채(滅債)다. 사람들을 일깨우던 글조차 말빚, 글빚이라며 자신이 쓴 책들을 내지 말라 했던 법정 스님이 생각난다. 그 넷이 멸정(滅情)으로 정든 사람 정든 물건으로부터 정을 뗄수록 죽음이 편해지며, 그 다섯이 죽으면 끝장이 아니라 죽어서도 산다는 멸망(滅亡)이다. 이 오멸철학을 실천하며 죽음을 겸허히 기다렸던 것이다. 죽어서도 산 사람과 더불어 사는 제례가 발달한 한국인만큼 안락한 마음으로 죽을 수 있는 노인은 세상에 없다고 한 것은 독일 노인운동의 대모 운루 할머니다.

▷프랑스 사상가 몽테뉴는 “우리는 죽음에 대한 걱정으로 삶을 엉망으로 만들고,삶에 대한 근심으로 죽음을 망쳐버린다”고 했다. 오멸철학이 아니더라도 살아 있는 동안 죽음 앞에 설 자기 모습을 가끔씩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남은 날들을 보다 소중히 쓰겠다는 다짐이자, 아름답고 의미 있는 마무리를 위한 삶의 지혜가 아닐지. 옥천군보건소가 다음 달 임종체험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생각해 보는 ‘죽음의 대한 가상체험’을 한다고 해서 사계문화를 돌아봤다. 웰다잉을 차분히 준비한다면 남아있는 삶도 더 진지하고 평온해질 게 틀림없다.

안순택<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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