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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맷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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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8.18 18:15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 정 희 시인·둥그레 시 동인 회장

참 못도 생겼습니다. 시거든 떫지나 말고 검으면 얽지나 말라는데 박박 얽은 상판은 울퉁불퉁해서 여간 흉하지 않습니다. 어처구니를 받친 쇠는 빨갛게 녹이 나 있고 입가에는 세월이 더께로 앉아 예쁜 구석은 약에 쓰려도 없군요.

바깥 광에 있던 맷돌의 화상입니다. 한여름에는 녹두에 벌레가 생기는 까닭에 우정 녹두지짐을 만들곤 했었죠. 자리를 깐 뒤에 깨끗이 닦은 맷돌을 놓고 돌리면 들들들 소리와 함께 녹두가 쏟아지고 그럴 때마다 오롯한 기분이 들곤 합니다. 물에 불렸다가 몇 번 행구면 껍질은 떠내려가고 하얀 속살만 남는데 쌀과 함께 갈아서 부쳐 내는 거죠.

우르릉 하고 천둥 같은 소리가 날 때는 하늘이 지나가는 듯했습니다. 낮은 음이기는 하나 들어간 곡식 또한 여름내 볕을 쬐고 모진 바람과 천둥소리 들으며 익었을 테니 두 개의 하늘이 맞물려 돌아간 폭입니다. 수 천 년 아니 훨씬 더 오랫동안 마주하며 우주를 지탱해 온 힘을 봅니다. 맷돌 역시 지그시 눌러대는 힘으로 곡식을 빻는 기구였잖습니까. 힘이 약하면 그냥 새나오고 적당해야 알맞게 타집니다.

믹서의 요란한 소리에 비해 들들들 울리기만 해서 대화도 가능합니다. 어머니와 딸이, 형님과 아시동서끼리 정담을 주고받으며 돌려대는 건 한 폭 동양화였죠. 껄끄러운 사이도 피차 느긋해질 수밖에 없고 그래서 더 애틋한 정경이군요. 투박한 생김보다 무척 예민해서 그냥 넣고 돌리면 될 것 같지만 많으면 생짜로 나오고 적을 때는 부서집니다. 알맞게 넣어야 잘 타개지듯 감당할 목표를 향해 나가야 원만한 삶이 된다는 걸까요.

더욱 묘한 것은 곡물을 넣는 시점입니다. 서서히 돌리면서 넣어야 무리가 없는데 아무리 해 봐도 어머니가 하는 것처럼 넣으면서 돌리는 게 어렵더군요. 멈춘 뒤에 넣고 돌리면 되지만 리듬이 깨지고 속력이 떨어지는 게 마땅치 않은 거죠. 몇 번의 시도 끝에 간신히 터득하면서 느낌이 많았습니다. 이어 달리기에서 바톤을 넘겨줄 때도 뛰면서 주어야 다음 사람이 순발력을 발휘하듯 삶의 노정에서도 잠깐 쉴 때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걸 알았습니다.

맷돌과 믹서의 차이점은 뭘까요. 믹서는 우선 내용물이 흔적도 없이 부서지지만 맷돌은 그냥 탄다고 하듯 바탕이 웬만치는 남게 되지요. 이를테면 솔기가 타개지듯 하므로 다시 꿰매는 게 가능하되 믹서는 갈아대면서 올이 풀리고 찢길 테니 손쓸 방법이 없습니다. 맷돌이 유독 부부를 상징하는 말로 쓰이는 건 느긋하고 은근한 분위기와 여차할 때는 복원이 가능한 그 때문일 거예요.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터득하는 것인데 시끄러운 소리에 질려 끄기가 바쁜 믹서는 별반 깨우칠 게 없군요.

그러고 보니 곡물을 넣는 곳과 어처구니까지 한 자리에 붙어 있습니다. 둘이서 손잡이를 잡고 돌릴 때, 하나가 밖으로 돌리면 다른 하나는 안으로 어긋나게 향하는데 맞지 않으면 혼자서 돌릴 때보다도 힘이 듭니다. 힘도 힘이지만 하나의 힘이 밖으로 향할 때 또 한 사람은 안쪽으로 향하는 데서 안팎의 역할을 고루 분배하며 사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어처구니는 맷돌의 손잡이를 말합니다. 흔히들 어처구니가 없다고 하는 그 어처구니였지요. 맷돌은 맞춰 놓고 자리까지 준비했는데 중요한 게 빠졌으니 맥이 풀리게 되고 그때 쓰는 말입니다. 붙박이로 달려 있거나 마른 곡식을 탈 때는 그런 일이 없지만 콩물 같은 것은 물기 때문에 닦아서 말리게 되고 바로 꽂아두지 않을 때가 탈이겠지요. 살다 보면 중요한 것을 빼놓기 쉬우므로 주의해야 된다는 것을 어처구니라는 말에서 돌아본 셈이죠.

특징이라면 두 개의 돌이 맞물려 돌아가는 그것입니다. 윗부분은 양 暘 즉 하늘이라 하고 아랫부분 음陰이 땅을 가리킨다면 양면성의 세상이 증명되지 않을까요. 흔히들 음양은 부부를 지칭하지만 밝고 어둠을 나타내는 명암과 길고 짦음의 장단과 높고 낮은 고저가 해당될 테죠. 아래 위로 맞물린 데서 하늘과 땅을 보는 우주적인 견해도 특이하지만 다르기 때문에 적절히 맞물려지는 관계는 더더욱 신비롭군요.

밟음은 어둠을 타박하고 높은 것은 낮다고 탓하기 일쑤나 똑같이 밝으면 눈이 부실 테고, 길거나 짧기만 해서도 균형이 맞지 않습니다. 다르다는 것은 차이가 날 뿐 틀린 게 아닌데 나와 다르다고 맞추기 위해 다툼을 벌입니다. 맷돌조차도 두 개의 돌이 조목조목 다른 건 이미 보셨잖습니까. 아랫돌은 윗면이 불룩하고, 윗돌은 오목해서 서로 잘 맞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사사건건 맞지 않는다고 불평이나 맷돌처럼 맞물려질 수 있기에 타박은 금물입니다. 같으면 절대로 합쳐지거나 맞물려질 수 없는 섭리를 못 생긴 맷돌에서 배우는 겁니다.

이 정 희 시인·둥그레 시 동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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