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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하선] 월복, 말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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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8.11 16:14
  • 기자명 By. 충청신문

오늘이 더위의 끝물이라는 말복(末伏)이다. 지긋지긋하던 찜통더위도 안녕이다. 오늘 말복은 중복(7월 23일)으로부터 20일을 건너뛰었다. 이는 말복이 중복으로부터 열흘 뒤가 아니라, 입추(立秋) 이후 첫 경(庚)일이기 때문이다. 간격이 열흘이 될 수도, 20일이 될 수도 있는데 20일이 되는 경우를 월복(越伏)이라 한다. 월복이 드물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한국천문연구원이 1900~2100년의 복날을 조사해보니 월복이 일어날 확률이 71.39%였다. 10번에 7번이 월복인 셈이요, 중복 뒤 열흘 만에 오는 말복이 오히려 드물다는 얘기다.

▷입추 뒤에 말복을 둔 것은 선조들의 지혜다. 가을의 입구에 들었어도 더위가 아직 남았으니 조심하라는 경계다. 경(庚)일은 오행으로 금(金)이고, 계절로는 가을을 상징한다. 복(伏)은 엎드린다는 뜻이니, 복날을 경일로 삼은 건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 가을이 살짝 얼굴을 내밀었다가 납작 엎드린 날이란 의미이겠다. 거꾸로 삼복은 ‘지칠 듯 더운 날’이니 ‘가을을 생각하며 더위를 이기는 날’이라는 교훈으로 해석하고 싶다. 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이날은 가을이고 싶은 바람으로 봐도 좋겠다. 어쨌든 올 삼복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다’는 삼복을 넘겼으니 앞으로 더위가 있다고 한들 그것은 가을을 시샘하는 노염(老炎)이고 잔서(殘暑)일 따름이다. 서늘한 바람이 불고, 이슬이 진하게 내리고, 쓰르라미가 울어 댈 것이니 말이다. 벼는 줄기마다 마디가 셋이 있단다. 복날마다 하나씩 생기는데, 초복에 한 살, 중복에 두 살, 말복에 세 살이요, 세 살이 되면 이삭이 패게 된다. 결실을 향해 가는 시기다. 사람들이 폭염과 싸우는 동안, 여름의 대지에 축복처럼 쏟아지는 풍부한 햇볕, 그 열과 빛을 남김없이 빨아들이는 알맹이들은 살찌고 있다.

▷릴케의 시 ‘가을날’을 노래할 날이 머지않았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命)하소서/ 이틀만 더 남국(南國)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땡볕 속에서 익어가는 과일은 온갖 고난을 견뎌야 결실을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이 아닐 수 없다. 휴가로 충전한 에너지와 복날 보양식에서 얻은 영양분을 모아 결실까지 힘을 내야 하겠다. 결실을 향한 실천의지를 다지는 ‘결연한 말복’이다.

안순택<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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