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신문=대전] 안순택 기자 = 1884년 10월 1일 세계표준시 채택을 위한 국제회의가 미국 워싱턴에서 열렸다. 회의의 주제는 딱 하나였다. 본초자오선, 그러니까 전 세계 태양 정오의 기준선이 되는 자오선을 어디로 할거냐 하는 문제였다. 미국만 해도 각 철도마다 시간이 달라 80개 시간이 있었으니 통일이 급했다. 1675년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은 영국은 1761년 시계기술자 존 해리슨이 크로노미터라는 해상시계를 발명하면서 런던에서 출항하는 모든 배는 그리니치표준시(GMT)를 따르도록 했다. 그리니치를 따르면 본초자오선을 정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이를 죽어도 따르지 못하겠다고 하는 세력들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게 영국과 원수지간인 프랑스였다. 프랑스는 파리를 지나는 자오선을 본초자오선으로 삼으려 했다. 회의는 출렁였다. 결국 1884년 10월 13일 세계 표준시는 그리니치를 본초자오선으로 삼는 걸로 채택되었고 지구상의 경도마다 돌출했던 각각의 지역 표준시들이 사라지고, 하나의 시간 틀에 인류가 속하게 되었지만 이처럼 표준시를 결정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각 나라의 입장과 상황이 다르고, 영국과 프랑스처럼 나라의 자존심이 걸린 일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시대는 해시계를 기준으로 남중고도를 따라 동경 120도를 표준시로 사용해왔다. 고종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면서 1908년 4월 1일부터 동경 127도 30분 기준의 표준시를 사용하도록 정했지만, 한국이 일제의 식민지가 되면서 일제는 1912년 1월1일부터 일본이 사용하는 동경 135도 기준의 표준시를 강요하게 된다. 해방이 되자 이승만 정권은 일제의 잔재를 청산한다는 명목으로 1954년 3월21일 자정을 기해 표준시를 대한제국이 정한 시간으로 돌려놓았다. 127도 30분은 일본의 135도보다 30분 늦다.
▷하지만 1961년 8월 10일 자정을 기해 군사정권은 일본과 같은 동경 135도 기준의 표준시를 사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지금이 이르고 있다. 북한이 어제 이번 광복절부터 동경 127도 30분을 기준으로 표준시를 바꿔 지금보다 시간을 30분 늦춘다고 발표했다. ‘평양시간’이 생겨나는 셈이다. ‘시간주권’을 회복은 2013년 새누리당 조명철 의원이 대표 발의하는 등 그간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북한의 ‘주체’ 시간쯤으로 도외시할 게 아니라 어느 시간이 우리 국민의 삶과 잘 맞는지, 나라에 도움이 되는 건지 다시 논의해 볼 때가 됐다.
안순택 <편집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