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신문=대전] 안순택 기자 =중국 하나라 때 유궁(有窮) 지역을 다스리던 ‘예’라는 제후가 있었단다. 그는 나중에 하나라 천자 자리를 빼앗아 즉위했는데, 온갖 비행을 일삼아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단다. 한척이란 청년이 커다란 몽둥이로 단번에 그를 황천길로 보내버렸는데, 그 몽둥이가 복숭아나무였다나. 이후로 귀신들은 복숭아나무를 무서워한다 하고, 그래서 복숭아는 제사상에 올리지 않는단다. 비록 제사상에 오르진 못해도 복숭아는 부모의 수연이나 생일날은 말할 것 없고 복중 여느 날에도 부모에게 올리는 과일로 빠뜨리지 않는 게 자식된 도리였다.
▷복숭아하면 조치원을 떠올린다. 1906년 농촌진흥청 원예연구소가 조치원읍 봉산리에 과수시범포를 설치한 게 시작이니 110년의 역사요, 세종시 지역은 평야와 구릉지가 조화를 이뤄 밤과 낮의 일교차가 적당하고 황토가 많아 맛과 향, 당도가 뛰어나 최고로 친다. 정부가 우수농산물의 품질 인증을 해주는 농산물품질인증제 1호(1992년)가 조치원 복숭아였으니 진작부터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하겠다. 그러니 복숭아를 팔면서 너도나도 조치원 복숭아라 붙이기 일쑤이고, 세종경찰이 가짜 조치원 복숭아 특별단속에 나설 만도 하다.
▷복숭아가 좋다는 과학적 설명보다 조상들로 하여금 찾아 먹게 한 주술적 이유가 훨씬 설득력이 있다. 시어머니가 미운 며느리를, 며느리가 앙숙인 시누이를 음해할 때 ‘복중에 복숭아 숨어 따먹다 들킨 계집’이라 했다. 복숭아 많이 먹으면 속살이 찐다는 속담도 있듯이 복숭아는 생김새가 여성의 성기를 닮았다 하여 속살, 즉 음력(陰力)을 왕성하게 하는 과일로 알았다. 그래서 부녀자들은 은밀히 많이들 먹었던 거다. 쥐(子)날마다 복숭아 한 알씩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신도 복숭아와 여자 성기의 유감주술에서 비롯된 믿음이다.
▷곤륜산에 사는 서왕모(西王母)는 3000년 만에 꽃이 피고 다시 3000년 만에 열매가 여는 불로장수 나무를 곁에 기르는데 바로 그 나무가 천도복숭아다. 그래서 복숭아씨를 모아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드려 수시로 들게 하는 것이 효도의 첫걸음으로 가르쳤던 것이다. 복숭아를 먹는 전통은 이처럼 유구하고 확고했던 것이다. 이번 주말 고려대 세종캠퍼스에서 세종조치원 복숭아축제가 열린다. 진짜 조치원 복숭아를 맛 볼 기회다. 복숭아로 만든 잼이며 막걸리도 맛볼 수 있고, 110년을 기념해 110인분 비빔밥도 한다니 벌써 군침이 돈다.
안순택 <편집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