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에 처마가 있는 건 햇볕을 차단 약화시키기 위해서다. 처마가 반감시킨 볕을 마루가 반사시키는 것으로 다시 반 반감, 그 반사광을 종이 문이나 대발로 투과시킴으로써 반 반 반감하여 방에 들여놓는다. 머리에 쓰는 갓의 넓은 테도 햇볕을 차단하기 위한 지혜의 소산이다. 이런 차양(遮陽)문화이기에 일광욕이나 해수욕이라는 풍습이 있을 수 없었다. 일광욕 대신에 선조들은 이 세상에 희귀한 월광욕을 했다. 남해안이나 제주도에 가면 검은 흑모래로 된 해변이 더러 있다. 부인네들이 이 해변에 가 흑모래로 배꼽찜질을 했던 것이다.
▷이 흑모래를 ‘달모래’라 하고 이 모래로 하는 찜질이기에 ‘달모래찜’이다. 흑모래는 달의 정기를 흡수한 모래로 이 달모래로 배꼽을 찜질함으로써 달의 정기를 체내로 끌어들이는 달모래찜이다. 그럼 냉이 가고 산력(産力)이 왕성해지는 것으로 알았다. 음양설에서 여자는 음이요, 달도 음이기에 월광욕으로 여자의 여자다운 힘인 생식력을 보강하는 철학적인 해수욕이었던 것이다. 보름달이 뜰 때 ‘달힘 마시기’도 그렇다. 뜬금없이 월광욕 이야기를 꺼낸 건 바닷가로 피서를 가지 못했다고 투덜거리지 말고 월광욕을 즐겼으면 싶어서다.
▷꼭 바닷가에 가서 모래찜을 해야 월광욕인가. 달빛의 기운을 온몸에 받으며 수변공원이나 산책길을 걷는 것도 훌륭한 월광욕이다. 달빛 아래 걸으며 백제 사람답게 ‘정읍사’를 흥얼거려도 좋을 것이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마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 대를 드대욜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긔야 내 가논 대 졈그를셰라/ 어긔야 어강됴리/아으 다롱디리.” 부산 해운대구는 달맞이고개에 ‘문탠(Moontan) 로드’를 조성해 월광욕을 관광상품화하고 있다.
▷‘청록파’하면 생각나는 조지훈 시인이 박목월에게 보냈다는 ‘완화삼’도 읊조릴 만하다.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푹푹 찌는 더위에 짜증만 내고, 에어컨 앞에서 TV나 볼게 아니라 월광욕으로 기운을 재충전하면 좋을 것이다. 우디 앨런의 영화 ‘매직 인 더 문라이트’의 ost ‘유 두 섬씽 투 미(You do something to me)’를 곁들이면 낭만적인 여름밤이겠다. 그래서 이준관 시인은 ‘여름밤은 아름답다’고 했던가.
안순택 <편집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