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푹 찌는 찜통더위의 계절을 영국 사람들은 ‘개의 계절’이라 부른다. 밤하늘에 개 모양의 별이 나타나고 나타나면서 사람들이 이성을 잃고 엉뚱한 짓을 할지도 모른다고 해서다. 폭염주의보나 경보가 발령되고, ‘울프리카(울산+아프리카)’ ‘서집트(서울=이집트)’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는 요즘 같은 더위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찜통더위에 일상적 삶을 지탱해주는 평상심마저 뒤흔들리고 만다. 후텁지근한 열대야는 정말 견디기 어렵다. 피곤하고 짜증만 난다. 생체리듬이 깨지면서 종일 무기력한 상태로 멍하다.
▷‘바람이 불어와도 화염과 같아/ 부채로 불기운을 부쳐대는 듯/ 목말라 물 한잔을 마시려 하니/ 물도 뜨겁기가 탕국 물 같네…’ 고려 문인 이규보의 시 ‘고열(苦熱)’이다. 이런 날 이인로는 탁족(濯足)을 권한다. ‘나물 먹고 배불러서 손으로 배를 문지르고…돌 위에 앉아 두 다리 드러내어 발을 담근다. 한 움큼 물을 머금고 주옥을 뿜어내니 불같은 더위가 도망치고….’(‘탁족부’) 무릎 아래까지 담그면 각탕이다. 탁족이나 각탕은 더위를 쫓고 하체의 피를 잘 돌게 해줘 건강에도 좋다. 생각만 해도 한 2~3도쯤 내려가는 듯하다.
▷어느 학인이 양개 스님에게 물었다. “더위나 추위는 어떻게 피해야 합니까?” 스님이 답했다. “더위도 추위도 없는 곳으로 가거라.” “네?” “더울 때는 그대를 덥게 하고, 추울 때는 춥게 하라. 그러면 더위도 추위도 없느니라.” 더위 속에는 더위가 없다는 얘기다. 마음이 시원하면 몸도 시원해진다는 거다.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이리저리 다니지만/ 항(恒) 선사는 홀로 방에서 나오지도 않네/ 선방엔들 더위가 없으랴만/ 단지 안정되면 몸도 시원한 것을.” 당나라 시인 백거이도 더위를 다스리려면 마음을 다스리라 노래한다.
▷찜통더위가 중순까지는 이어질 거라는 예보다. 무엇보다 마음먹기 달렸다. 차라리 더위에 빠져보면 어떨까 싶다. 더위에 지쳐 짜증난다고 화풀이를 하다보면 자신만 우습게 된다. 적당한 운동과 영양보충으로 더위 적응력을 조금씩 높여가는 것도 좋다. 더위를 이기는 것도 체력이 있어야 한다. 젊은 사람들이야 이겨낼 수 있지만 노인들이 걱정이다.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늘어나고 있다. 폭염사망자가 3000명을 기록한 1994년 악몽이 재연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어린이 노인 환자 등 사회적 약자를 더위로부터 보호해야겠다.
안순택<편집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