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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하선] 브란덴부르크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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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8.02 18:37
  • 기자명 By. 충청신문

[충청신문=대전] 안순택 기자 =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1987년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門)에 서서 “미스터 고르바초프, 이 장벽을 헐어버리시오!”라고 외쳤다. 그때 그는 2년 뒤 그의 요구가 현실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1989년 1월 스무 명의 동독 시민들이 동베를린에 대표사무소를 포위했을 때도 세계는 이것이 동서독 통일의 서막을 열 거라곤 예측하지 못했다. 이해 11월 8일 밤 군중들은 장벽을 넘고 또 넘었고, 9일 베를린 장벽은 붕괴됐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날 브란덴부르크 문이 활짝 열렸다. 브란덴부르크 문은 통독의 상징으로 우뚝 선다.

▷독일의 정신적 아이콘인 브란덴부르크 문을 세운 건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1744~1797)였다. 이 대형 상징물의 공사는 1788년부터 4년 동안 이뤄졌다. 궁전 건축가 카를 고프하르트 랑한스가 그리스 아폴로 신전으로 들어가는 문인 프로필리아를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조각가 샤도가 만든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콰드리가’로 장식했다. 빌헬름 2세는 마차에 탄 여신으로 ‘평화의 여신’ 아이레네를 조각하게 했다. 브란덴부르크 문을 평화의 문으로 선포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 문을 처음 통과한 인물은 프랑스의 나폴레옹이었다.

▷나폴레옹은 1806년 예나지역에서 프로이센 군대를 물리치고 베를린에 입성하는 승리의 열병식을 이곳에서 가졌다. 나폴레옹이 사두마차상을 분해해 파리로 가져가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프로이센은 1814년 전쟁에서 나폴레옹을 물리치고 마차상을 되찾아왔고, 마차에 탄 여신의 손에 철십자상을 쥐어 주면서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로 바꿔 불렀다. 이때부터 브란덴부르크 문은 독일인들에게 승리와 자긍심을 상징하는 문으로 다가와 자리 잡았으며, 전쟁에서 승리한 독일 군대들이 개선할 때 반드시 통과하는 문이 됐다.

▷유라시아 친선특급이 지난 31일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1만4400㎞의 여정을 마감했다. 윤병세 외교부장관은 “통일을 이뤄 끊어진 유라시아 대륙을 잇고 평화번영에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염원을 담았다. 통일이 ‘우리의 소원’이라면 기억해둘 게 있다. 베를린장벽을 무너뜨린 건 국민들의 자각이었다는 점이다. 거대한 장벽도 자유와 통일을 향한 국민들의 열망을 막진 못했다. 조금씩 조금씩 뚫린 구멍이 마침내 열리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 국민이 한 마음으로 통일을 열망하고 북한을 변화시켜 나갈 때 통일은 올 것이다.

안순택<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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