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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낮에 나온 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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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7.21 16:30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이 정 희 시인·둥그레 시 동인 회장

낮달이 떴다. 어릴 적 부르던 동요 그대로 해님이 쓰고 버린 쪽박 같고 혹은 신고 다니다가 집어던진 신발도 같다. 창백하게 빛나던 것이 구름에 가려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구름이 아니어도 갑자기 뭔가 생각난 것처럼 자취를 감추곤 했지만 여전히 하늘을 서성이고 있을 것 같아 잠깐 망연한 기분이었다.

달의 특징은 밤에만 보인다는 점이다. 그보다는 스스로 자전하는 까닭에 오늘처럼 낮에도 가끔 보이는데 밤에만 뜨는 줄 착각한다. 바뀌는 모양은 또 지구를 향해 도는 공전과 관련이 있으며, 스스로 혹은 다른 천체를 향해 도는 자전과 공전을 계속하는 태양계의 별처럼 달도 지구를 따라 돌다가 태양-지구-달의 순으로 일직선상일 때는 보름달로 보인다. 그 다음 직각을 이루고 태양빛이 반쪽만 비치면서 반달로 또는 눈썹처럼 가늘게 보이므로 더욱 신비스럽다.

우리도 삶의 궤도를 향해 도는 작은 천체였다. 특별히 꿈은, 달이 지구를 공전하듯 나를 향해 돈다고 설정하고 보니 가끔은 희미했었다. 태양과 지구와 달이 일직선일 때는 보름달로 보이듯 삶과 나와 꿈이 순탄할 때는 큼직하고 탐스럽게 보인다. 직각이 되면 또 반쪽만 보이듯 삶과 나와 희망의 각도가 어긋나면 크기도 작고 이울어져 덩달아 의기소침해진다. 뜨는 시간도 메일 밤 달랐으나 이미 동쪽 지평선상에 떠 있었다. 또 항상 보름달이라 오늘같이 낮에도 보이듯 희망도 언제 어디서나 보일 텐데 나를 향한 꿈과 삶의 주기가 달라지면서 보름달로 오래, 혹은 초승달처럼 잠깐 새 사라지기도 한다.

초승달 역시 한때 보름달이었다면 나를 향해 도는 희망 역시 늘 크고 푸짐한데 잠깐 보이지 않는다고 혹은 작다고 탈잡는 일은 없다. 일 년 내 둥근 달을 열 두 번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언제나 둥글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듯 꿈도 관점이 바뀌지 않고는 제대로 볼 수 없다. 우리 추구하는 게 희망이라면 절망도 있고 둘은 똑같이 둥글 텐데 희망은 커졌다 작아지는 모습 그대로 절망은 또 일 년 내 둥근 진짜 모습으로 보면서 힘들어진다. 어차피 반반씩 볼 거라면 거꾸로 즉 소망은 늘 둥근 원래대로 절망은 실제 그대로 보면 포인트가 어긋날 리 없는데 유감이다.

설혹 또 그런들 어떠랴 싶다. 일례로 보름달은 이울어질 일만 남았고 초승달은 보름달로 차오를 전조다. 살면서 보름달처럼 넉넉할 때는 달도 차면 기운다는 말을 새기며 풍족한 가운데서도 자중하는 것이다. 그 삶이 그믐달과 초승달처럼 곤궁해 보인다 해도 금방 차오를 것을 생각할 동안은 소원을 이룰 테고 행복할 수 있으니 또한 아름답다. 힘들 때도 조각달은 이제 곧 둥글어질 거라는 소망이 있으니 마음이 항상 넉넉해지는 것이다.

삶과 꿈과 나의 운행주기가 어긋날 때의 해프닝 역시 뜨는 시각과 모양이 바뀌면서 다양한 밤풍경이 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태양과 달은 또 항상 그대로인데 지구에 사는 내게만 둥글게 혹은 이지러지게 보이듯 삶과 희망 역시 늘 같은데 관점에 따라 소망이 없다느니 힘들다면서 까탈을 부린다. 밤이 되면 아침에나 밝아지련만 천행으로 달이 뜨는 것은 끝없는 소망을 뜻하는 걸까. 태양빛이 반사된 것이라 미미하지만 잠 못 드는 누군가를 위해 쓸쓸한 창가나 뒤뜰을 서성이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얘기였던가.

또 다른 특징은 같은 자전과 공전주기로 한 쪽만 보이는 점이었으나 약점을 드러내지 않는 자존심은 높이 사고 싶다. 우리 마음 곤할 때마다 제 2의 고향처럼 떠올리곤 했던 전설적인 달이 밤낮의 극심한 기온 차이로 세균조차 살지 못한다는 사실 또한 의외다. 꿈속 같은 달밤의 정경을 풍요롭게 해 주는 것으로 날마다 바뀌는 그보다 더한 건 없겠지 했는데 그런 내막이 있는 줄 몰랐다. 꿈과 이상은 멀리서 봐야만 아름다운 개념이었다. 우리 모두 이루기 위해 노심초사 동동거리지만 적정선의 유지로써만 그 신비가 돋보이는 것도 또 다른 소망이었으니까.

낮달을 보며 삶의 속내를 유추하는 마음이 불현듯 아련해 온다. 깊은 밤 쪽반달이라도 비치면 옥구슬 잠긴 냇가는 밤하의 진주 벌이 되고 숲 속 잠든 새도 부스스 일어났었지. 명주올 같은 달빛도 기실은 태양에 반사된 거라면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는 희망도 온갖 희비애락의 결정체인 삶을 되비추면서 우리를 밝혀 준다. 밤이 아니면 피곤한 영혼은 쉴 수가 없고 소망도 품지 못할 테니 밤의 정령으로 떠오르는 달은 그래 더 아름다웠다. 이 모든 게 또 밤에 연출되는 건 낮에도 보이지만 밤에 특별히 선명해 보이듯 어느 날 더욱 뚜렷해지는 꿈을 상징한다.

우리 보름달 이미지처럼 의기양양 사는 걸 원하지만 가끔 애수에 젖어 살 동안 윤택해진다면 삶의 슬라이드는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날마다 보름달이면 식상해질 테고 눈썹달만 보인다면 그도 짜증스럽다. 보름달은 풍만해서 좋고 쪽반달은 아취가 있는 것처럼 풍족한 삶에서는 적절히 즐기되 역경이 닥칠 때는 오솔길에서도 빛나는 조각달을 생각하곤 한다. 보이지 않는 뒷면은 상처투성이라도 옥토끼가 방아를 찧는 정경만 보이듯 어떤 경우에도 꿋꿋한 삶을 견지하는 것이다.

이 정 희 시인·둥그레 시 동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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