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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 여름휴가, 우리 동네로 여행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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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7.16 19:09
  • 기자명 By. 안순택 기자

삼성맨이 부럽다. 부서별로 가능한 곳은 1주일 넘게 휴가를 준단다. 다른 기업들도 긴 휴가를 주긴 하지만 그게 다 생산량을 줄이기 위한 휴가란다. 물건이 안 팔리니 재고도 줄이고 인건비도 아끼기 위해 휴가를 늘리는 거다. 삼성 직원들이 부러울 수밖에. 삼성은 게다가 전통시장 상품권 10만 원씩을 휴가비로 준다. 가뭄과 메르스로 이중고를 겪고 있는 농촌을 돕기 위해서란다. 뜻도 좋다.

삼성전자는 한술 더 뜬다. 최대 1년간 자기계발 휴가를 쓸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 장기 해외여행이든 어학연수든 계획서만 내면 조건 없이 자기 충전의 시간을 갖게 해주겠다는 거다. 여가(餘暇)를 뜻하는 그리스어가 스콜레(Scole)다. 평온 평화 학문 철학 창조적 활동을 뜻하는 말로 자유재량과 자기향상 자기실현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학교(School), 학자(Scholar)의 어원으로 보면, 쉰다는 건 곧 교양을 쌓는다는 것과 같다는 뜻이겠다.

자기계발 휴가에 진즉 눈을 뜬 이가 세종대왕이시다. 대왕은 1426년 집현전 학자 권채 신석견 남수문에게 명을 내린다. “일에 치여 제대로 공부할 시간이 없을 테니 당분간 본전(本殿)에 나오지 말고 집에서 열심히 독서를 해 성과를 내도록 하라.” 휴가를 줘 독서에 전념하도록 한 사가독서(賜假讀書)제다. 짧게는 몇 달, 길게는 3년까지 집이나 한적한 절에서 책을 읽도록 배려했다. 비용을 대주는 건 물론 음식과 옷까지 내렸다. 훌륭한 임금과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기업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올 여름 휴가의 트렌드는 ‘국내로 여행가기’다. 해외여행으로 쓰는 비용을 국내로 돌려 좀처럼 살아날 조짐을 보이지 않는 내수 경기를 살려보자는 취지다.

그깟 여행경비가 얼마나 된다고 싶지만 여행은 상당한 소비를 유발하는 산업이다. 여행 전 필요 물품 구입부터 이동·숙식 등의 모든 과정에 유통업, 운송업, 식음료, 숙박업 등의 폭넓은 업종에서 지출을 수반한다. 이 여행의 목적지가 해외라면 항공 및 여행서비스 등의 산업을 제외하고는 내수경제 활성화 효과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작년 한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들의 여름휴가 기간은 평균 4.2일, 예상 휴가 비용은 평균 56만5000원이었다. 올해는 여름휴가 기간이 4.6일로 늘어났다. 이 돈이 해외가 아니라 국내에서 쓰인다면, 그래서 경기 회복의 마중물이 된다면 좋은 일이다.

칸트는 “노동 뒤의 휴식은 가장 편안하고 순수한 기쁨”이라 했다. 그래서 쉰다. ‘참회록’으로 유명한 성 어거스틴은 “세상은 책이다. 여행하지 않은 사람은 딱 그 한 페이지만 읽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여행을 간다. 그 페이지를 해외 명소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채우고 싶은 이도 있을 것이다. 18세기에 활약했던 베니스의 극작가 카를로스 골드니는 “지혜로운 여행자는 자기 나라를 깔보지 않는다”라고 했다. 발품을 팔아보면 안다. 가까운 우리 주변에 얼마나 아름다운 명소가 많은지.

둘레길을 걸어도 좋을 것이다. 얼마 전, “너무 아름답더라”는 친구의 말을 듣고 대청호오백리길, 4구간 호반낭만길을 걸었다. 대청호반자연생태공원을 만나고 호반을 따라 리아스식 해안처럼 들고 나는 길을 걷는 맛이 기가 막혔다. 구간의 끝 ‘연꽃마을’에는 지금 연꽃이 피어있을 것이다. “아름답더라”했더니 다른 친구가 “아름답기로 치면 19구간이지”라고 낼름 받는다. 청남대길인 19구간도 가볼 참이다.

여름 속으로 타박타박 걸어 들어가 보자. 둘레길도 좋고 올레길도 좋고 그냥 시골길이어도 좋다. 걷다보면 마음속으로 들어가 동심의 문을 열고, 깔깔거리는 저 아이가 어른이 된 바로 나라는 비밀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농촌체험마을도 좋다. 농촌이라 해서 왠지 불편하고 재미없을 것 같다는 선입견은 접어둬도 된다. 옥수수 밭길을 누비는 경운기를 타보고, 감자를 캐보고, 맷돌로 콩을 갈고, 비닐하우스에서 노란 참외를 따고, 바지를 걷어 올린 채 계곡에 들어가 반두나 족대로 물고기를 잡고, 갯벌에 나가 조개와 낙지를 잡아보고, 수차를 이용해 소금을 만드는 염전의 경험은 추억으로 남을 게 분명하다. 하얗게 소금처럼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을 보는 맛은 어떤가. 우리 산하와 바다에 취해봤으면 싶다. 올 여름은 ‘지혜로운 여행자’가 되어볼 일이다.

 

안순택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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