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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내 삶의 오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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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7.07 19:01
  • 기자명 By. 충청신문

내가 꼭 한 번 보고 싶은 게 있다면 오로라다. 가끔 인터넷에 들어가서 사진을 꺼내 보곤 하는데 참으로 환상적이어서, 자연에서 최고 아름다운 비경이 있다면 오로라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수많은 빛의 입자가 허공에서 춤추듯이 허공을 오르내린다. 직접 보면 훨씬 더 실감이 나겠지만 때로 사진이 풍경보다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내게도 오로라에 대한 향수는 있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태양을 향해 설 때마다 떠오르던 빛의 향연이 생각났다. 눈 감으면 명멸하는 빛과 함께 붉은 물기둥이 솟아올랐다. 노을 지는 강물처럼 선홍색 불못이 출렁이고 금방 또 원형의 푸른 고리가 허공을 선회하고 있다. 거대한 보랏빛 띠가 눈앞에서 빛나는가 하면 마지막에는 지금까지 본 스펙트럼의 잔상이 소용돌이와 함께 돌아가며 찬란한 빛의 폭풍으로 휘몰아친다.

그런 날 밤에는 꿈속에서도 나타났다. 지평선 멀리 나선형 오로라가 걸리면 초록색 달팽이가 그런 것인가 싶게 화려했다. 옷자락 같은 구름을 잡고 있다가 얼결에 떨어져도 자작나무 숲과 새하얀 눈 원시림은 아름답기만 했다. 눈썰매를 끄는 사람들 위로 오색구름이 투영되면 눈부신 하늘이 땅 끝까지 덮인다. 꿈속 같은 풍경이되 꿈속은 아닌 북극 지방의 판타지다. 극히 순간이고 반경도 짧았으나 강렬한 빛은 오래도록 눈앞을 맴돌았다. 남들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어쩌다 보는 오로라의 환상은 커다란 축복이었다.

오로라는 새벽이라는 뜻이며 태양의 폭발로 나온 플라즈마(초고온 기체)가 자기장에 의해 지구로 끌려오고 대기 중의 공기와 부딪치면서 생긴다. 북유럽과 그린란드와 알래스카 지역에 붉은색과 녹색 빛으로 드리워진다. 하늘하늘한 구름이 둘둘 말려 올라갈 때는 커튼처럼 보이고 꽃무늬 같은 옷자락은 야회복처럼 눈부시다. 녹색의 분수가 지평선 끝까지 뿜어지기도 하고 빛의 파도가 몰려갈 때는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듯했다.

우주가 만든 최고의 판타지는 태양이 지구에 보내는 빛의 메시지였다. 지구가 하나의 자석이라면 자력이 센 북극에 강력한 빛의 프리즘이 통과하게 된다. 이를테면 털 스웨터를 벗을 때 '따닥' 소리를 내며 불꽃이 튀는 것과 비슷하다. 춥고 건조한 북유럽과 극지방에서 유독 많이 생기는 건 자기장에 따른 현상이다. 쇳가루 담은 종이를 자석에 대면 빳빳하게 일어나듯, 태양의 플라즈마 역시 태양과 지구 사이 거대한 허공에서 찬란한 빛의 향연을 펼친다.

어릴 때는 단지 신비한 느낌만 들었으나 발생 과정을 알고 난 지금은 자연의 경이로움에 더 집착하게 되었다. 오로라의 극치라면 누가 뭐래도 그 빛깔이었으니까. 대기 중에 펼쳐지는 모습도 다양하지만 황록색, 붉은색, 황색, 오렌지색, 푸른색, 보라색 등의 산뜻한 빛깔은 지구상의 어떤 색소로도 표현하기 어렵다. 유일하게 노을과 무지개 역시 보통의 색소와 칠감보다는 산뜻하지만 눅눅한 장마철의 그것과 춥고 건조한 극지방에 나타나는 오로라와는 판이하다.

최근 캐나다 옐로나이프에는‘오로라 빌리지’라고 하여 편하게 기다릴 수 있는 시설이 많다. 최상의 관측을 위해 전망이 좋은 곳에 설치해 놓고 인공적인 빛도 최소화했다. 오로라를 위해서는 빛을 차단해야 하듯 암흑 속에 사는 것도 삶의 오로라를 선명하게 만드는 걸까. 기다리면서 쉴 수 있는 따뜻한 오두막과 '오로라 알람'도 있어 연락이 오면 곧 바로 달려간단다. 어쩐지 실망스러운 느낌이나 추울 때는 ℃영하 40까지 내려간다니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일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것을 아침 저녁 노을 보듯이 하겠지만 태양에서 먼 극지방일수록 선명하다니 아름다움은 그런 것일까. 오로라가 찬란한 구름처럼 밤하늘을 떠가는 것은 빛과 자연의 예술이다. 북유럽과 알래스카 등지보다 훨씬 올라간 북위 80°은 불모의 얼음 대륙이되 오로라 혼자 빛나고 있을 정경은 신의 영혼이 담겨 있다는 표현 그대로다. 더 올라 간 남북극점의 오로라는 더더욱 찬란할 것이나 무인지대라서 쉽게 볼 수 없는 희소성 때문에 위도가 낮은 곳을 택하는 것인데 현지 사람이 아니고는 그도 힘들 테니 또한 신비스럽다.

오로라의 가장 큰 특징은 대규모 방전으로 생기는 점이다. 배터리에서 전기가 빠져나가듯 태양의 전기 입자는 자력이 센 양극에서 방전을 일으키며 비경을 연출한다. 오로라는 현지에서만 가능하나 자기에 해당될 부富와 명예를 버리면서 보게 될 삶에서는 저마다의 느낌으로 감지된다. 플라즈마에서 자기磁氣가 빠져나가고 오로라가 생기듯 나 역시 환상을 볼 때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찬란한 빛깔에만 매료되었었다.

눈을 뜨면 어지럽고 돌부리에 넘어지기도 했으나 두려운 건 동시에 사라지는 환영이다. 무심코 감을 때는 빛이 사라질 것 같아도 찬란한 빛을 위해서는 그도 무의미했다. 오로라의 환상에 집착하는 게 나이를 보면 민망할 때가 많으나 사진을 보며 예의 또 북극으로 떠난다. 동화 속 주인공처럼 자작나무 숲을 날아가는 것도 아니고 순록과 눈썰매도 없지만 여행하는 느낌을 갖게 해 주는 사진작가 또한 고맙다. 나의 꿈은 가서 직접 보는 것이나 조급할 건 아니다. 강렬한 빛 때문에 눈 감고 가다 보면 틀림없이 보이던 신기루야말로 세상 어떤 오로라보다 아름다운 것을 믿기 때문이다.

 

이정희 시인·둥그레 시 동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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