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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진주는 이물질의 결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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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6.09 19:08
  • 기자명 By. 충청신문

진주는 6월의 탄생석이다. 이맘 때가 되면‘조개의 눈물’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이미지가 떠오른다. 진주는 흔한 보석처럼 땅에서 캐내는 것이 아니라 바다 속에 사는 조개의 몸 안에서 만들어진다. 조개껍질과 조갯살 사이로 모래 같은 이물질이 들어오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체액을 내뿜게 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곧 진주다. 더없이 아름다운 보석이었기에 그렇게 처절한 과정이 필요했던 것일까.

엊그제 사 온 전기스탠드는 영락없이 진주조개를 닮았다. 새까만 갓 속에 전구가 들어 있고 그 속에서 은은한 불빛이 새 나오는 게 천연 진주였던 것이다. 껍데기에는 수많은 물결 주름이 파여 있고 그게 바로 끝없이 물결치는 바다처럼 보였다. 어느 날 이물질이 들어오면서 진주를 만들어낸 감동의 일대기가 스쳐갔다.

이물질이 들어오면 진주는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첫째는 무시해 버리다가 그냥 죽어버리는 경우가 있는 반면 이물질을 받아들이고 도전을 시작할 때 진주가 만들어진다니 참으로 아름다운 얘기가 아닐 수 없다. 모래알을 받아들인 조개는‘nacre’라고 하는 즙을 짜내서 1년이든 2년이든 계속 싸매게 되고 오랜 날 끝에 결국 진주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다양한 빛깔의 양식 진주도 생산되고 있으나 진주라면 모름지기 이물질에 오랜 날 단련되면서 만들어지는 게 정석이지 싶어 한동안 짠했다. 어느 날 우연히 들어온 이물질 때문에 무척이나 고통스러웠겠지만 그게 아니면 만들어질 수 없다. 그때부터 자기와의 싸움이 시작되었을 테고 끝없이 물결치는 속에서 힘들었을 테니 상처는 아름다움의 모태로 남는 것일까.

이물질은 진주에게 있어 스트레스다. 수용하거나 밀어내는 것 모두가 여의치 않은 지경에 이른다. 체념 끝에 그냥 두면 끝없이 괴롭히지만 받아들이면 마음도 편하거니와 진주를 품을 수가 있다. 힘들다고 거부했다면 진주는커녕 딱딱한 덩어리로 남아 더욱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고심 끝에 내린 처방이 나름대로 생명의 즙을 짜내서 한 겹 한 겹 싸매는 식이었는데 그게 결국 환상의 보석을 형성했다.

진주보다 아름다운 건 인고의 날들이었다. 진주가 이물질의 결정체라면 살 동안 받는 스트레스도 같은 맥락이다. 스트레스인 줄 알고 있던 것이 끝내는 아름다운 진주가 될 것이기에 이물질 같은 역경도 자기향상의 계기가 된다. 역경이 닥칠지언정 시험의 가름대라 여기고 묵묵히 견딜 동안 한 차원 숙성되는 것이다. 바다 속의 한 마리 조개가 이물질을 싸맨 채 끝내는 진주를 토해 내듯 힘든 가운데도 참고 견디다 보면 진주라고 할 영광의 날을 맞게 되지 않을까.

진주가 보석의 여왕으로 된 것은 오로지 탄생의 고통을 참아낸 결과다. 모래알이나 기생물이 들어갔을 때 감싸기 위해 애써 분비한 체액이 쌓여서 이루어졌다. 진주가 또 그렇게 고통의 결정체라면 다시 또 이물질로 될 수 있음도 생각해야 될 것이다. 오랜 침묵 속에서 아픔을 참고 기다린 끝에 눈부신 보석으로 떠오른 진주는 또 그만치 민감한 보석이었다. 열에 약하기 때문에 찜질방 같은 데서 끼고 있는 건 금물이고 깨끗하게 한다고 치약 등으로 닦아도 특유의 광채가 사라진다. 오랜 상처와 눈물로 빚어진 보석이었기에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가 보았다.

껍질을 통해 모래알이 들어가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 약간 열려 있을 때 미세한 모래알이 조개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모래는 그때부터 괴롭히기 시작한다. 모래를 털어낼 수도 없어 할 수 없이 모래를 층층 덮기 시작하는데 완전히 덮여 진주가 되고 더 이상 괴롭히지 않게 될 때까지 길게는 7년이 걸리기도 한다. 진주 조개는 대부분 못생기고 껍질도 서로 잘 맞지 않는데 바로 그 틈으로 이물질이 들어가고 결국 못생긴 조개일수록 최상급의 진주가 들어 있을 확률이 많다는 의미다.

가끔 조개 한 마리가 수많은 진주를 머금기도 한다. 우리 또한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이 따를지언정 수용하고 극복하는 과정으로 훨씬 높은 차원의 인격이 형성된다.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진 꿈과 소망이라고 대견하다 여기어 함부로 드러내기보다는 지금까지 그래 온 것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경건한 마음과 태도로 일관해야 될 것이다.

불현듯 알전구의 골진 틈으로 진주조개의 속삭임이 들려온다.“힘들었어. 눈물로 진주를 만들었다지만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었어.”라는, 아주 오래 전부터 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잘 견디었다는 자부심은 있었을 것 같다. 어려움을 참고 견뎌야 하는 이유로 그보다 더한 배경이 또 있을까. 좋은 여건 속에서 일군 결과도 뿌듯한 법인데 악조건에서 어렵사리 이룬 거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떼어내지 못할 바에는 품는 것도 보람이 되는 법, 이제는 어떤 문제점이든 껴안는 날들이고 싶다. 진주의 모태는 이물질이듯 살아 숨쉬는 보석의 의미를 다시금 돌아보았다.

이정희 시인·둥그레 시 동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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