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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0주년 특별 대담] 금성백조 정성욱 회장

“지낼수록 편안한 ‘집’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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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4.28 19:01
  • 기자명 By. 충청신문

“‘천천히 그러나 제대로’ 균형적 성장 사업 볼륨 조절 칭찬·격려, 열정 낳고 생산적이며 창의성 깨우는 것”

“건설외길 50년의 산 증인으로 도시의 모든 건축물은 백년대계를 내다보고 만들어야 한다”는 정성욱 금성백조주택 회장은 가치있는 공간을 통한 고객만족을 최우선으로 삼으며 도전과 혁신을 통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기업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칭찬은 늪에 빠진 사람을 건져내고 풀 죽은 이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고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귀로 먹는 보약이라는 정성욱 회장을 만났다. <편집자 주>

 

 

-금성백조 창립 34주년, 전국 유수의 건설업체로 성장했는데 어떻게 건설업과 인연을 맺게 되었나?

5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혼자 4남매를 키우며 많은 고생을 하셨다.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가정형편이 어려워 바로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러던 중 17살에 건설업과 인연을 맺어 건설현장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고 목공사의 밑 일꾼으로 일을 시작해 주경야독으로 성실히 배웠다.

21살에 카투사에 입대해 선진시스템을 경험하던 중 11개월 15일 만에 독자라는 이유로 군복무를 마치고 의가사제대를 했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일을 하던 중, 주변분들이 앞으로 건설업이 유망하다는 조언을 들었다. 군 제대 후 10여 년간 현장 기사부터 소장까지 바쁘게 지내며 그동안 배운 기술을 토대로 창업의 꿈을 꾸었다. 그리고 35살이 되던 1981년 건설업이 아닌 주택건설업체로 먼저 금성백조를 창업하게 됐다.(이후 1989년 건설업 면허 취득, 현재 ‘종합건설사’)

 

-금성백조를 이끌며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였고 가장 보람 있었던 때는?

1986년 대전 비래동에 금성백조 아파트 분양당시, 100세대 중 3세대만이 분양되어 예상치 못한 실패에 너무 힘이 들었지만 여러 차례 아픈 경험을 통해 문제를 극복하면서 한 단계씩 발전할 수 있었고 2년 뒤, 1988년 중촌동 금성백조아파트 182세대 분양 시 전국 최초로 147:1이라는 경이적인 청약경쟁률을 기록하며 대성공했다. 지옥과 천당을 오갔던 때이지만 중촌동 분양으로 인해 금성백조의 이름을 전국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집을 짓는 것’에 대한 철학은?

금성백조는 창립 후, 양심과 신뢰라는 경영이념으로 건설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했으며 품질에 있어서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 자부심과 높은 기준으로 프리미엄 주거문화를 선도하기 위해 노력했다. 예미지의 슬로건은 삶이 아름다운 아파트이다. 드러나는 화려함 보다 지낼수록 느껴지는 편안함을 짓는다. 현대인의 주거문화가 시대를 따라 변모함에 따라 아파트 역시 공동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고려했다.

주택은 입지선정부터 주택이라는 상품의 미래를 내다보아야 한다. 그래서 금성백조는 토지를 구매할 당시부터 100여 가지의 항목을 분석해 주택의 20년, 30년을 내다본다.

4월 분양한 대전 관저 예미지는 구봉산을 품은 힐링단지로 산의 사계와 절경을 집에서 만끽 할 수 있을 만큼 우수한 입지를 자랑한다.

 

-향후 사업 다각화에 대한 구상 한 말씀?

신규 주택공급은 토지공급에 따라 제한적일 수 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우량 토지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주택에서 파생되는 재개발, 재건축, 도시정비사업 등 신규사업 부문 역시 단계적으로 추진 중이다. 건설이 아닌 전혀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보다는 주택과 부동산 개발, 종합건설사로서 우리가 가진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구상중이다.

‘천천히 그러나 제대로’를 바탕으로 무리한 외형확장이 아닌 안정적이고 또 균형적인 성장을 할 수 있도록 사업의 볼륨을 조절해 나갈 계획이다.

 

-금성백조는 사회적 소외계층, 다문화가정, 문화예술체육 등 여러 분야에서 사회공헌사업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는데?

금성백조는 1981년 2월 9일,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직원으로 시작했다. 건설경기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사업에 부침(浮沈)이 있을지라도 항상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며 명절 때만큼은 직원들 모두가 복지단체를 찾아 작은 정성을 표하자고 다짐했다.

그 정신이 이어져 예미지 사랑나눔 봉사단이 됐다. 현재는 250여명의 전 직원들이 예미지 사랑나눔 봉사단에 가입해 함께 활동하고 있다. 지금이야 사회공헌이라는 멋진 말로 불리지만 기업을 이끌면서 어려운 이웃을 돕고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라고 생각했다.

 

-오늘날 있게 한 인생철학은?

건설업을 하면서 갖게 된 나의 좌우명은 ‘가장 낮은 곳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자’이다.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겸양지덕(謙讓之德)하는 것, 모든 일에 신뢰가 바탕이 되는 것이 바로 나의 건설 철학이자 인생 철학이다.

또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칭찬은 늪에 빠진 사람을 건져내고 풀 죽은 이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고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귀로 먹는 보약이다. 칭찬과 격려를 받은 사람은 긍정적인 사고로 열정을 낳고 생산적이 되며 창의성을 깨우는 것이다. 우리 모두 칭찬과 덕담으로 불끈 힘을 내보자.

 

-금성백조 회장으로서의 꿈과, 개인적인 소망은 무엇인가?

금성백조와 대전은 떼려야 뗄 수 없다. 지역의 크고 작은 어려운 일에는 언제나 귀 기울이려고 노력한다. 사회공헌 활동에 적극 나서고 지역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대전에서 금성백조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들에 대한 작은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최근 금성백조가 4년간 많은 인재를 채용했다. 신입사원부터 경력사원까지 새로운 젊은 피를 수혈 받았다. 기업의 백년대계는 중심은 사람이다. 지역인재 양성 뿐 아니라 금성백조의 우수인재, 글로벌 인재를 육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일 생각이다.

 

-현재 건설업계가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정부와 업계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나?

무엇보다 정부 정책이 먼 미래를 바라보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 한국의 건설기업 중 상당수는 글로벌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훌륭한 인적 시스템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이 같은 힘을 강화하고 발전시키는 정책이 필요하다.

또한 지역 업체는 정부 지원 정책과 함께 뼈를 깍는 자정으로 실질적인 수익 창출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충청신문 창간 10주년을 맞아 애독자에게 한 말씀?

충청신문의 창간 1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충청신문은 그동안 우리 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부분들을 담으며 충청권의 대표 일간지로 자리매김했다. 앞으로도 지역의 번영과 발전을 위하여 다양한 시각과 깊고 넓은 보도로 시민들의 정보의 그릇을 채워주기를 바라며 다시 한 번 충청신문의 10주년을 축하한다.

대담/ 최상수 편집국장

정리/ 류지일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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