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봄에는 그 꽃을 본다
이양희 시인
이 봄에는
늙은 벚나무가 꽃을 두 번 피운다
이 봄에는
꽃이 앉아있던 꽃받침이 꽃으로 태어난다
며칠간 빌려 쓴 의자를 고스란히 남겨둔 채
벚꽃은 벚꽃바람을 따라 달아나고
마치 꽃처럼
꽃받침이 피어있는 동안
봄은
늙은 벚나무 위에서 한참 더 무르익는다
꽃이 피고 꽃이 지는 그 어느 봄엔들
꽃만 꽃이었겠느냐만
나의 봄에 꽃이 지는 이 봄에는
꽃만 꽃이 아니다
꽃이 진 자리를 지키는 꽃받침도 꽃이다
시평) 그렇지요. 어찌 꽃만 꽃이겠습니까? 벚꽃 진 자리, “꽃받침이 피어있는 동안 /봄은/늙은 벚나무 위에서 한참 더 무르익는”것을요. 어찌 지금 사랑만이 사랑이겠는지요? 사랑을 떠나보낸 그 빈자리. 그 꽃받침도 사랑이 발효되는 시간으로 찾아오는 봄인 것을요(조용숙/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