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했다는 말
황학주 시인
메밀밭 같은 하얀 파도가 캄캄한 마음 위를 지났다
그 말을 살짝 떨어뜨리듯
두고 가려 한 마음이 뭔데?
나는 그냥,
목이 긴 새처럼 쏙쏙쏙 가슴에 뭔가 박고 있으며
진흙덩어리처럼 흘러내리는 비를 맞고 있으며
눈앞이 캄캄한데 거기 파도와 무늬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마음이 벽으로 서고……
이런 직립은 기절에 가깝지 않은가
그 말이 마음을 넘어오지 않는다는 것에 놀란다
멀리 보이는 두 겹의 수평선을 향해
새가 운다
시평) 그동안 당신과 함께여서 행복했다는 말, 이 말처럼 쓸쓸한 것이 또 없을텐데요. 이 말도 시인의 가슴에서 발표되면 멋진 시가 되는가 봅니다. 그래서 “눈앞이 캄캄한데 거기 파도와 무늬가 있었다는 것을/기억하는 마음이 벽으로 서고……” 또 “그 말이 마음을 넘어조지 않는다는 것에” 놀란다는 것. 결국은 겹쳐질 수 없는 마음의 종결어미가 ‘행복했었다’가 되어 돌아오는 것이었네요
(조용숙/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