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의 꿈
김인숙 시인
세상에서 가장 느린 풍향계를 달고
나는 나를 운반한다
내일의 바람은 아직 내 것이 아니므로
후생(後生)에게 맡기고
꽁무니에 따라 붙는 오늘의 바람을
폐부 깊이 들이마시고
나는 나를 끌고 평생을 간다
온몸에 뒤집어쓴 이 알이 부화할 때까지
기꺼이 나락을 헤매다
나는 새가 될 거야
붉은 날개를 가진 새가 될 거야
종일 타오르는 불꽃,
불타는 노을이 될 거야
그러니 한낮의 뙤약볕을 나에게 퍼부어 주렴
내 부리와 더듬이가 말라비틀어지도록
내 심장이 타들어가도록
온몸이 날개가 될 수 있도록
세상에서 가장 느린 풍향계를 달고
나는 나를 운반한다
현생(現生)에 부는 바람만이
오직 내 편이다
시평) 세상에서 가장 느린 풍향계를 달고 나를 운반하고 있는 달팽이는 꽁무니에 달라붙는 오늘의 바람을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며 나를 끌고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달팽이의 이 느린 행보에는 부리와 더듬이가 말라비틀어지고 심장이 다 타들어가서 온몸이 달개가 되는 그날을 향한 우리네 인생의 행보이기도 합니다. 삶과 죽음의 사유가 자연스럽게 녹아든 달팽이의 행보 속에서 오늘을 사는 사유를 펼쳐 봐도 좋겠습니다. (조용숙/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