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곳곳 건물 벽에 환하게 웃는 얼굴이 담긴 큼지막한 현수막이 걸리고, 출근길 네거리엔 지나가는 차에 대고 인사하는 이들이 등장했다.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얼굴을 알리려는 예비후보들의 발걸음은 바쁘기만 한데, 유권자들은 누구를 뽑을지 진즉 점찍은 듯하다. 대전시만 해도 시민들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 사람을 뽑겠단다.
대전선관위가 내놓은 지역 10대 어젠다에 다 들어있다. 복지시장, 문화시장, 환경시장 등등 시민들이 그리는 시장의 모습은 여럿인데 그 가운데 으뜸이 경제를 살리고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시장이다.
각론을 뭉뚱그려 총론을 그려보면 그림은 뚜렷하다. ‘내 꿈을 이뤄줄 시장, 나를 위해 봉사하는 시장’이다. 도지사도, 교육감도, 광역의원도, 시장 구청장 군수 기초의원도 다르지 않다. 유권자들의 희망은 똑 같다.
그렇다면 예비후보들도 얼굴을 알리려 뛰어다니기만 할 게 아니라 ‘내가 여러분이 찾는 그 사람’이라는 걸 보여줘야 한다.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무엇보다 꿈을 보여줘라. 선거가 축제로 승화될 수 있는 건 유권자 가슴 속에 잠들어 있는 꿈과 열정을 후보들이 깨울 때다. 쏘삭거려 깨운 그 꿈이 가슴을 다시 채우면 신이 나고 흥도 난다. 무언가 세상이 달라질 거 같다. 그 꿈이 모두 실현되진 못할지라도 현실의 고달픔에서 일시나마 해방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유권자들은 행복해 할 것이다.
아직은 춥고 고단해도 지도자만 잘 뽑으면 다시 도약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거다. 유권자가 바라는 지도자는 당장은 표가 안 되더라도 진정 지역이 잘되는 길이라면 당당하게 말하고 밀고 갈 수 있는 인물이다. 이 사람을 믿고 따르면 4년 뒤엔 달라져 있을 거라는 희망과 확신을 주는 사람. 그런 즐겁고 행복한 꿈을 보여 줘라.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정치를 말해야 한다. 주민들을 배부르고 등 따습게 하는 게 정치라 보는지, ‘논어(論語)’가 들려주는 ‘정자정야(政者正也)’를 정치라고 보는지, 다른 생각이 있다면 그 생각이 무엇인지 말해야 한다. ‘정자정야’는 세상을 바로잡는 게 정치라는 이야기다. 그런 생각이라면 ‘정치는 바름’이라고 말하라는 거다.
촛불이 되겠다, 소금이 되겠다, 거름이 되겠다고 말할 게 아니라, 촛불인지 소금인지 거름인지 똑 부러지게 말해야 한다. 정치를 하겠다면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촛불과 소금과 거름은 자기희생을 뜻한다. 촛불은 빛을 내며 소금은 짠맛으로 부패를 막고, 거름은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촛불을 말하려면 혼돈 속에 길을 잃은 이들을 비추는 등대감임을 보여주고, 소금을 말하려면 녹아 어우러져 맛깔난 맛을 내고 세상의 부패와 싸울 줄 알아야 한다. 거름을 말하려면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녹아 탐스러운 열매를 맺도록 힘을 더하는 부추김이 돼야 한다. 스스로를 태우고 녹여 세상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선 같아 보이지만 같지 않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말하려면 지금 말해야 한다. 정당의 공천 작업이 시작되면 당의 눈치 보느라 말하고 싶어도 말하지 못한다. 내 생각이 당의 노선과 다를 수도 있다. 다른 사람과 다른 나만의 생각, 내가 펼치고 싶은 나만의 꿈, 그 신선한 언어를 말할 때는 지금이다.
눈앞의 표를 겨냥한 ‘모범답안’은 들을 만큼 들었다. 세 치 혀로 유권자의 정신을 흐리게 하는 말에 속을 유권자는 없다. 지역감정을 부추겨 ‘재미 보려는’ 선동가에게 빠지지 않을 만큼 유권자는 성숙해졌다.
말하기보다 더 많이 귀를 기울이고, 큰 소리보다 작은 목소리로 말하라. 내 말이 옳다고 주장하기보다 조곤조곤 설득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작은 소리가 큰 울림으로 전해질 때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산속 개울의 물소리는 “졸졸”하고 작지만, 봄이 오는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