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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왜들 영화 ‘변호인’을 보러 가는 걸까

“군부 독재와 싸우던 시절도 아닌데 헌법 1조 2항이 심금을 울릴 줄은 정말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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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4.01.09 18:10
  • 기자명 By. 안순택 기자
▲ 안 순 택 편집부국장

영화 ‘변호인’의 관람 열기가 뜨겁다. 개봉 19일 만에 관객 800만 명을 넘어섰다. 작년 초 1000만 관객을 동원했던 ‘7번방의 선물’보다, 역대 최대 흥행작인 ‘아바타’보다 6일이나 빠르다고 한다. 1000만 관객 동원도 무난하리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뜨겁다 못해 자칫 데일 정도의 열풍이다.

이러니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변호인’은 1980년대 부산을 배경으로 돈 없고, 빽 없고, 가방끈 짧은 세무변호사 송우석이 인권변호사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다. 어찌 보면 한 변호사, ‘송변’의 인생드라마에 불과한 스토리인데, 도대체 그 무엇이 있어 사람들이 공감하고 그토록 열광하는 걸까.

영화 평론가들과 영화 매체들은 흥행 요인으로 배우들의 열연을 꼽는다. 주인공 송우석 역을 맡은 송강호의 연기는 보면 안다. 이 연기 잘하기로 소문난 배우는 속물과 투사(鬪士)를 넘나들며 보는 사람의 감정을 쥐락펴락한다. 송우석과 대척점에 선 곽도원의 연기도 좋다. 야만적인 공권력을 상징하는 차동영이 단단하기에 ‘송변’의 열변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초짜 임시완을 비롯해 김영애 오달수 송영창 등 관록의 배우들이 ‘미친’ 연기력으로 뒤를 받친다.

재미도 있다. 1980년대를 치열하게 살아간 사람들의 유쾌한 웃음과 뜨거운 감동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예상외로 크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실화를 모티브로 했다는 점도 흥행에 한몫했을 터다. ‘송변’ 캐릭터는 부분적으로 노 전 대통령의 일화에서 빌려왔고, 영화의 중심이 되는 사건도 1981년 ‘부림사건’에서 가져왔다. 영화야 팩트와 픽션을 버무려 놓았지만 당시 시대 상황과 시대를 꼼꼼히 재현한 미술이 중장년층 관객들의 향수를 불러냈음직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흥행 요인으로 대사를 꼽고 싶다. 에둘러 말하는 법 없이 정공법으로 내지르는 투박한 대사들이지만 그래서 더 마음에 꽂힌다. 하고 싶었던 말, 듣고 싶었던 말들이 가슴을 뛰게 만든다.

“데모한다고 바뀔 세상이냐. 계란 아무리 던져 봐라. 바위가 부서지냐”는 ‘송변’에게 진우는 이렇게 들려준다.

“바위는 아무리 강해도 죽은 거지만 계란은 살아서 바위를 넘는다.”

세상 살면서 이 대사를 하고 싶었던 적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당신은 안 돼”하고 단칼에 자르고 면박 주던 ‘갑’에게, “지방대 출신은 어려운데…”하고 말 자르던 면접관에게, 벽돌담처럼 틈도 없이 가로막는 세상에게 수도 없이 이 말을 하고 싶었다. 대놓곤 못하고 골목길 어느 포장마차에서 혼자 중얼거리며 이 말을 하고 있었을 거다.

“내 아들 딸들은 이런 세상에서 살지 않게 하려는 겁니다.” ‘송변’은 이렇게 말하고 또 “가난하면 민주주의도 못 누린다는 말에 저는 동의 못 합니다”라고 소리친다.

‘송변’은 자기가 본 부조리한 세상의 맨얼굴을 외면하지 않고 이웃의 아픔에 공명하려 한다. 사람 노릇 하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거 잘 안다.

그러나 남의 일에 얽히는 게 귀찮고 싫어서 보고도 못 본체, 듣고도 못 들은 척 살아온 내 새가슴을 아프게 헤집어 놓는다. 그리고 결정적 한 방.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 국가란 국민이란 말입니다.”

군부독재에 항거하던 시절도 아닌데 헌법 1조가 심금을 울릴 줄은 정말 몰랐다.

지극히 상식적인 대사들인데, 상식적인 이야기가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건 지금 우리 세상이 상식적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 대국이라는 말에 가려진 상식이 통하는 아주 평범한 세상, 기본적인 원칙이 통하는 아주 평범한 세상이 아직도 멀었다는 사실을 새삼, 가슴 확 뚫리도록 외쳐주기에 ‘변호인’에 관객이 몰리는 것은 아닐까.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더라”는 한 중년 관객의 감상평이 가슴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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