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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함으로 노력하면 우승은 따라오게 돼 있다”

한국 골프 황제 최경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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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3.11.12 17:37
  • 기자명 By. 김형중 기자

프로 골퍼 최경주(43)는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다. PGA(미국프로골프협회)에서 8승을 거둔 대한민국의 자존심이다. 그의 출생지가 전남 완도라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골프와는 아무런 연관성이 떠오르지 않던 그런 외진 섬 동네에서 어떻게 세계적 선수가 나올 수 있었을까를 늘 궁금하게 만든다. 그가 3일 대전 열방교회에서 임제택 담임목사에 초대로 자신의 골프인생을 얘기했다. 대전이 처음이라는 그는 완도 섬 소년에서 미국 PGA 8승을 이룬 세계적인 스포츠스타가 되기까지의 감동적인 인생스토리를 풀어냈다. 그의 연설은 어느 연사보다도 흥미있고 진솔했고 교훈적이었다. 연설 전 최경주를 만나 그의 인생여정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열정과 노력, 최선만이 자신을 크게 만든다”

-일반부 개인 우승 … 프로테스트 한번에 통과

-한국 스포츠 알리는 스포츠문화센터 건립 구상

인터뷰를 끝내고 연설까지 듣고 나니 그의 오늘을 있게 한 것은 우연과 필연의 오묘한 작용의 결과라는 생각이 많아졌다. 그리고 세계적인 선수가 되려면 ‘공짜’는 없고 오로지 땀과 열정, 노력의 결과였다는 것이다.

▲시작은 우연이었다 = 김과 미역밖에 모르던 동네에서 중학교 때 역도를 시작했다. 당시8900원만 내면 등록금을 면제해줘 부모에게 효도해야 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2년6개월을 했지만 후배들에게 치이고 팔이 길어 역도에 불리했던 터라 운동을 그만두게 된다. 공부를 하려니 그동안 운동만 해서 수업을 못 따라 가면서 어린 최경주는 중대한 결심을 한다. 공부보다는 해왔던 운동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결심을 한다.

▲인생은 줄을 잘서야 한다 = 그는 고교 입학식 날,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운명을 만나게 된다. 운동으로 승부를 보겠다고 마음먹은 그는 체육교사가 역도할 사람 나오라고 해서 무조건 뛰어 나갔는데 학생들을 두 줄로 세우는 것이었다.

한 줄은 역도 줄이었고 자기 줄은 골프 줄이었다. 우연의 시작이었다. 그때 교사가 역도 줄에 세웠으면 지금의 최경주는 없었다. 그래서 “줄을 잘서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하지만 골프를 모르는 아버님과 동네 사람들이 “골프는 부모님 등골 빼먹는 경기니 하지 말라”는 권유에 아버지께서 3개월간 쫓아다니면서 나를 말렸다. 머리를 써서 아버지와 협상을 한다. 방과후 오후에 가사 일을 다 돕고 밤에 하기로 협의하고 실행에 옮겼다. 아버님이 좋아 하셨다.

▲필연, 골프의 손맛 느끼다 = 골프에 푹 빠지게 된 계기가 있다. 골프를 처음 접하게 된 날 연습장에서 그가 난생 처음 골프채로 공을 치게 된다. 그때 휘두른 7번 아이언에 공이 맞아 나갈 때 팔 끝으로 전달되던 감촉은 ‘몸에서 번개탄이 타는 듯한’ 전율이었다고 회상했다. 그 순간 그는 골프에 인생을 걸어야겠다는 각오를 하게 됐다.

그는 “그 것이 아마 나의 골프 인생에서 두 번째 우연이었을 거라는 생각이다. 우연이 아니고선 첫 타에 그런 느낌을 맛보기는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감동 시킨 자만이 최고가 된다 = 그 무렵 완도에서 처음 골프연습장이 세워졌는데 그와 친구는 “닭장일 거야” “꿩 사육장일 거야”라고 내기를 했다. 이 골프장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됐고 골프장에는 형광등이 열 개가 붙어 있어 밤에도 연습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저녁밥을 먹고 나면 8~12시까지 한 번도 안 쉬고 4시간을 공을 쳤다. 시간이 아까웠다. 나중에는 손이 안 펴졌다. 이런 생활이 그를 급성장시켰다. 주변에서 나를 쳐다보기를 “나중에 저놈은 뭐라도 하겠다”고 했다.

“그게 정답이었다. 없으면 가서 찾아라. 못하면 하게 하라. 나의 어려움을 보기보다는 투덜거리기보다는 열심히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라. 그걸 감동시킨 자만이 최고가 될 수 있다”고 그는 역설했다.

▲이사장과 만남과 전환점 = 시간이 지나 실력이 아주 좋아지던 어느 날, 어떤 분이 연습을 할테니 공을 1박스를 달라고 했다. 공을 다 치다말고 최 경주가 거울을 보고 공을 치는 것을 보시고는 감탄했다. “어떻게 거울을 보고 공을 그렇게 잘치냐” 해서 “저는 낮에는 학교가고 오후에는 일 돕고 밤엔 공을 쳤다”고 했다. 그 분이 떠나기 전 “자네 서울 올 일 있으면 전화 하게”라고 하며 명함을 줬다. 무심결에 가방 속에 명함을 넣고 다니다 하루는 잠이 안와 뒤척이는데 불현듯 그 명함이 생각나 ‘서울 행’을 결심하게 된다.

▲청소년 최경주 서울행 = 소풍가는 날 어머니께 2만원을 받아 무작정 광주를 거쳐 서울로 갔다. 명함을 보고 전화를 하니 서울 한수고교 김재천 이사장이 나와 학교를 보여줬고 “이 학교로 오면 뭘 해 주겠냐”고 물었더니 학비, 장학금 등 일체를 해주겠다고 했다. 필요한 서류를 다해줘 다시 완도로 돌아가서 학교 선생님께 드리며 서울 한수고등학교로 전학 간다고 통보했다. 그는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모든 일을 최경주 스스로가 결정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개입되었다면 내가 잘못되었을 경우 나는 그 사람 탓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회상했다.

▲외로운 서울 생활과 군복무 = 서울에 와서 보니 인맥이며 학연이며 나를 바라보는 이도 아무도 없었다. 서울서 내 실력은 형편없었다. “이사장님께 제가 졸업하거든 꼭 뭔가를 해주고 프로로 가겠습니다”하고 약속을 했다. 이제까지 한 것에 3배를 더 해야 겠다 싶어 연습강도를 3배를 높였다. 참 감사한 것은 내 몸이 그것을 버텨줬다는 것이다. 하고 싶어도 몸이 안 따라주면 못한다. 또 군대 갈 시기가 다가와 운 좋게 방위로 빠졌다. 연습에 열중하고 있을 즈음에 완도 선배들이 최 선수를 예쁘게 봐줘 골프 레슨을 할 수 있게 해 줬다. 골프 레슨도 요점만 짚어주니 인기가 높았다. 국가 의무도 하고 골프 실력을 이어나갔다.

▲프로행 결심과 입문 = 군 제대 후 이사장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프로 경험을 쌓을 겸 한 대회에 나갔는데 일반부 개인 우승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걸 받자마자 학교로 가서 트로피와 증서를 이사장님께 드리고 이제 프로로 가겠다고 선언했다. 92년 말 프로테스트를 한 번에 통과 하고 데뷔한다.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포기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도 꼭 써주는 말이 ‘최선을 다하고 포기하지 말아라’라는 말이다. 간단하지만 실천하기 어렵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고 최선을 다할 수 있고 나도 모르게 물질이 따라올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렇게 하다보면 우승 트로피가 그냥 오버랩이 된다. 마음이 그 곳에 가있으면 마음이 흔들리기 마련이다. 이런 것을 무시하고 계산하지 않고 내가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다보면 우승 트로피가 내 품으로 들어오게 된다.

▲PGA행을 결심하다 = 92년 이후 2년 간 한국 남자프로골퍼 상금랭킹 1위를 했다. 그래서 2위 박노섭 형과 같이 티아와 아일랜드 월드컵을 갔다. 연습장에는 카펫 같은 곳에 공이 세워져 있었다. 잔디를 파내고 치면 안 되는 줄 알았다. 잔디를 안 파고 공만 싹 걷어 치는 연습을 2시간동안 했다. 하지만 너무 피곤했는데 외국선수들은 그렇게 안치고 잔디를 파면서 치고 있었다. 그린 주위에서 잔디를 파내고 있었는데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내 가슴에 확 꽂히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 미국에 와야 겠다” 처음에 생긴 열정에 더 더해진 PGA투어에 대한 열망과 열정이, 그리고 영어가 통했다는 신기함에 미국에 갈 결심을 하게 됐다.

▲PGA를 위한 미국행 준비 철저히 = 월드컵 참가이후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가는 15시간 안에 앞으로 5년간의 계획을 다 세워 적어놓았다.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저는 5년 안에 PG A로 입성하겠다”라고 선언한다. 집에 와서 부인에게 이러저러한 상황을 겪었고 이런 계획을 세웠다고 했더니 와이프가 100프로 동의를 해줬단다. 당시 한국 선수가 PGA를 뛴 일이 없었다. 특별한 마음을 가지고 준비를 했다. 방에다가 크게 ‘I can do it PGA tour or Europe tour’라고 적어놓고 매일 보고 또 보고 그렇게 준비했다. 실질적으로 밥을 해먹을 때 어떤 음식을 먹을 때 가장 효율적인지, 잠을 몇 시간을 가야 가장 좋은지를 실험해보며 최상의 컨디션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영어 못하지, 담배피지, 키 작지, 팔 짧지 등 이렇듯 미국인보다 좋지 않은 조건을 어떻게 극복할지 미국인들을 뛰어 넘기 위한 모든 할 수 있는 준비를 다했다.

▲간절하면 통한다 = 6년간 아시안투어에서 뛰었다. 1999년 일본 기린오픈에 나갔다. 마지막 날 목사님께 기도를 해달라고 했더니 ‘시편 23편’을 읽어줬다. 편하게 치라고 하시 길래 다 툭툭 털고 갔다. 언론에서 ‘최경주는 국내용이다’라는 말 이후 간절함이 더해졌다. 애원을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홀에 집중하니 “마치 누가 호미로 길을 파 놓은 것”처럼 공이 굴러갈 길이 보였다. 결국 연장전에 갔다. 긴장감에 야디지북과 장갑도 놓고 티박스에 올랐는데 상대선수가 공이 훅나서 왼쪽 숲으로 들어가고 처음으로 아시아투어에서 1위를 한다.

▲PGA입성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 = 일본투어에서 10위를 하고 있었는데 9위까지 PGA의 관문인 Q스쿨 출전권을 따낸다. 기도 끝에 결국 앞선 순위 중 한 사람이 참가를 못해 최선수가 가게 된다. 그래서 1년간 준비하고 PGA를 다녔고 Q스쿨 마지막날 대회에 임하게 된다. “이 대회를 지고 갈 수는 없다”는 마음으로 시합에 임했더니 떨려서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6라운드가 진행되고 있는데 “4언더만 치면 되겠다” 싶어 열심히 친 결과, 16홀까지 4언더를 만들었다. 2홀만 버티면 되는데 참 어려웠다. 마지막 18홀에서 30야드를 남긴 상황의 3번째 어프로치 샷이 긴장해서 뒷 땅을 쳐 그린 엣지로 굴러 갔다. 하나의 공에 ‘한국으로 ‘백 홈’이냐, 아니면 내년에 또 이 지옥 같은 Q스쿨을 또 뛰어야 하냐’를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긴장됐다. 4m퍼트였다. 얼마나 부들부들 떨리던지 또다시 쭈그려 앉아 모자내리고 기도를 했다. 간절함을 가지고 마음을 다시 가다듬었다. 퍼트를 했는데 그 공이 홀컵으로 빨려 들어 갔다. 뒤를 돌아보니 모두 울고 있었다. 그 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최경주가 있었다고 그는 회상한다.

▲잊지 못할 경기 = PGA 8승을 거뒀다. 이 가운데 2번의 우승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중 하나는 잭 니클라우스 선수가 주최를 하는 대회였다. 세계 50위 내에 있는 선수들이 다 와서는 잭 니클라우스 선수에게 인사를 나눴다. 내가 그분이 주최하는 경기에 나간다니까 와이프가 당신이 우승할테니 걱정하지 말고 치라고 했다. 마지막 4라운드 전날 아담스 선수를 이길 수 있게 세 자녀와 함께 기도했는데, 다음날 경기에 임하다보니 6언더파가 16언더가 됐다. 치면 벙커, 또 벙커, 겨우 파. 드디어 마지막 홀 버디 찬스였는데 벙커에 있었다. 라이언선수는 16언더파로 이미 끝나있는 상태. 내 공이 벙커에 들어간 순간 라이언 선수는 집으로 갔다. 내가 벙커에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국 벙커 샷이 버디로 이어지면서 17언더파로 우승했다.

▲두 번째 잊지 못할 경기 = 타이거 우즈가 주최하는 골프 대회였다. 이 대회는 매우 어려운 곳이다. 어려운 곳이니 컷만 통과하자는 마음으로 갔다. 1,3라운드에 2언더파를 거쳐 9언더파를 만들어갔다. 3일째 7언더파를 만들고 와이프 전화를 받았는데, 요한복음 말씀을 알려주며 외우고 해보면 잘 될 것이라 했다. 외운 말씀이 생각조차 안 날 만큼 긴장되었고 14번 홀 까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14번 홀에서 3퍼트를 했다.

리더보드를 보니 아직 내 이름이 있어 마음을 다시 가다듬자 조금 편해졌다. 그러자 15번 홀부터 자연스레 그 말씀이 떠오르며 경기가 잘 풀렸다. 3타 차로 결국 우승을 거머쥐었다.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다.

▲‘대충 대충’ 사는 것은 싫다 = 그는 자신이 싫어하는 것이 ‘대충 대충’이라면서 골프에서 양손으로 골프채를 맞잡는 그립(Grip) 자세의 중요성을 등반가의 로프 고리에 빗대어 설명했다. 사람이 골프와 만나는 최초의 접점인 그립은 골프의 생명인데 얼마나 대충대충 잡는 경우가 많으냐고 했다. 등반가가 로프의 고리가 풀려 떨어져 죽었다면 고리 때문에 죽었다고 할 수 있냐는 거다.

▲노력하면 원하는 것 따라 온다 = 계산하지 않고 단순함으로, 간절함으로 노력하다보면 우승은 따라오게 되어있다. 많은 업적을 남기고 살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최경주재단을 만들게 됐다. 재단을 통해 후배를 양성하고 꿈나무를 양성함으로서 스포츠 꿈나무 육성과 한국의 스포츠를 세계에 알리는 스포츠문화센터 건립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그는 세 가지 믿음이 있다고 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선을 다해 만든 자존감, 격려와 칭찬을 기반으로 한 주변의 믿음,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담·정리 = 김형중부국장 kjh9691@dailycc.net

 

●최경주 그는 누구인가?

 

▲1970년5월19일 전남완도태생 ▲한서고, 광주대 무역학과 졸 ▲2013 제41회 미국프로골프기자협회 찰리 바틀렛상 ▲2012 KPGA투어 최경주 CJ 인비테이셔널 우승 ▲2011 제11회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스포츠부문 ▲2011 KPGA투어 최경주 CJ 인비테이셔널 우승 ▲2011 PGA투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 ▲2010 제26회 신한동해오픈대회 준우승 ▲2010 PGA 투어 마스터스 토너먼트 2위 ▲2010 PGA투어 트랜지션스 챔피언십 준우승 ▲2009 아시아투어 이스칸다르 조호르오픈 골프대회 우승 ▲2009 신한금융투자 희망나눔 챔피언십 우승 ▲2008 한국프로골프 제24회 신한동해오픈 ▲2008 KPGA투어 SK텔레콤오픈 우승 ▲2008 PGA투어 소니오픈 우승 ▲2007 PGA투어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준우승 ▲2007 PGA투어 AT&T 내셔널 우승 ▲2007 PGA투어 메모리얼 토너먼트 우승▲ 2006 PGA투어 크라이슬러 챔피언십 우승 ▲2005 PGA투어 크라이슬러클래식 우승 ▲2004 제68회 마스터스골프대회 3위 ▲2002 PGA투어 탬파베이클래식 우승▲2002 PGA투어 컴팩클래식 우승 ▲1999 PGA컵 골프토너먼트 우승 ▲1999 한국오픈 골프선수권 우승 ▲1999 기린오픈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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