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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 오매~, 단풍 들었네

“가지 마오, 가지 마오 풍악엘랑 가지 마오 만산홍엽 불이 붙어 살이 데고 오장이 익어 못 노닐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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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3.10.17 18:42
  • 기자명 By. 안순택 기자
▲ 안 순 택 편집부국장

오매~, 계룡산에 단풍 들었네. 단풍이 우우우 몰려오고 있다. 우리나라 단풍의 시발점은 설악산. 설악에서 출발한 불씨가 백두대간을 타고 소백산 월악산 속리산을 거쳐 마침내 계룡산 천황봉에 불을 붙였다.

하나의 불씨가 광야를 태우듯 충청 산하가 곧 물들어가리. 산벚나무 붉나무 화살나무 단풍나무 옻나무 산딸나무는 붉디붉게, 느릅나무 은행나무 고로쇠나무 피나무 버즘나무 플라타너스는 노랗게 노랗게….

“저기 가는 저 길손 말 물어보세. 한로(寒露)철 풍악(楓嶽) 풍광 곱던가 밉던가. 곱고 밉기 전에 아파서 못 노닐레라. 가지 마오, 가지 마오, 풍악엘랑 가지 마오. 만산홍엽(滿山紅葉) 불이 붙어 살을 데고 오장이 익어 아파서 못 노닐레라, 못 노닐레라” 옛 사람이 불렀던 잡가(雜歌)의 단풍유람 대목처럼 살이 좀 데게 단풍구경 가야겠다.

설악산 천불동 계곡 단풍이 그토록 화려하다고? 지리산 피아골 핏빛단풍은 산을 닮아 단풍조차 장중하다. 그렇다고 어디 설악산 지리산 내장산만 단풍이 있는가.

소백산 단풍이 울긋불긋 수채화라면 우뚝우뚝 바위를 수놓는 월악산 단풍은 점묘화다. 대둔산이 암벽에 다홍치마를 두른다면 새악시 노랑저고리는 계룡이 입는다.

계룡산 단풍은 갑사가 으뜸이다.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란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오릿길 단풍은 화사하고 용문폭포 단풍은 숨이 막힌다. 산을 불 지르고(산홍. 山紅), 물을 붉게 물들이고(수홍. 水紅), 사람의 얼굴마저 발그레 달아오르게 한다(인홍. 人紅)는 삼홍은 피하골 삼홍소만 있는 게 아니다. 용문폭포도 그러하다.

대둔산은 어떤가. 기암괴석을 둘러치듯 수놓은 단풍은 빨갛고 노랗고 색채의 향연이다. 신 새벽 안개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붉은 단풍은 너무 붉어 아득하다.

칠갑산 단풍은 정상에서 내려다보아야 한다. 아흔 아홉골 단풍이 비단자락을 펼쳐놓은 듯하다. 서산 가야산 단풍은 부드럽다. 최영 장군, 사육신 성삼문, 추사 김정희, 의병장 최익현, 윤봉길 의사, 김좌진 장군, 개화당 김옥균, 남로당 박헌영, 만해 한용운…. 이른바 ‘기 쎈’ 사람들에게 정기를 나눠준 산답지 않게 포근하다. 서해안 노을과 어우러지면 특별한 장관을 이루고.

“단풍만 보다 왔습니다/ 당신은 없고요, 나는/ 석남사 뒤뜰/ 바람에 쓸리는 단풍잎만 바라보다/ 하아, 저것들이 꼭 내 마음만 같아야/ 어찌할 줄 모르는 내 마음만 같아야…/ 단풍만 사랑하다/ 돌아왔을 따름입니다/ 당신은 없고요.”(최갑수 ‘석남사 단풍)

꽃이 피고 지듯, 잎도 지기 전에 꽃을 피운다. 단풍은 꽃이다. 붉은 단풍도 노란 단풍도 떨어져 뿌리로 돌아갈 것이다. 땅으로부터 받아들여 꽃과 열매를 맺었으니 이제는 돌려줄 때. 받기만 하고 주지 않으면 생명을 지속할 수 없음을, 지탱할 수 없음을, 그 순환의 질서를 단풍은 알고 있다.

땅에 떨어지는 단풍 낙엽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냥 맞이한다. 담담하다. 앙앙불락하지 않는다. 활활 불꽃을 태웠으니 무슨 후회가 남으랴.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았으니 아름다운 것이다.

마당에 떨어진 단풍낙엽은 모아 뿌리로 돌려주되 붉은 단풍은 조금 덜어 말려두기를. 옛 사람들은 붉은 단풍이 사악한 기운이나 귀신을 쫓는다 여겨 단풍잎으로 차를 달여 마셨으니 단풍잎으로 달이면 차 맛이 보다 정화되고 약기운을 돋운다던가.

잠 못 이루는 새벽녘, 별 한 번 보고 괜히 시린 코끝처럼 그렇게 스미듯 물드는 단풍. ‘저기 저기 저 가을 단풍드는 날’ 붉게 물든 숲속 길을 걸어보시라. 붉디붉은 단풍에 취해 보시라.

단풍도 한때, 그런 단풍의 아름다움에 빠져보는 것도 한때. 단풍에 취해 세상 시름 저 멀리 날려버리고 마음껏 즐겨보는 거. 따지고 보면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사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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