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부여군, 中 낙양시 초청 방문

제31회 목단문화축제 참여로 우호 ‘돈독’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13.04.29 19:02
  • 기자명 By. 윤용태 기자

-각국의 초청도시 만찬 후 용문석굴 둘러보는 시간 가져

-부여군 대표단, 개막식 참석… 비즈니스 장 역활 ‘톡톡’

▲용문석굴

이후 점심에는 이 낙양시장이 주최한 각국의 초청도시 만찬이 이뤄졌고 식사를 마친 후 유 부주임, 정 과장의 안내로 용문석굴을 둘러보는 시간이 주어졌다.

낙양시에 위치한 석굴사원으로 불교문화 예술의 정수이며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용문석굴은 돈황의 막고굴, 대동의 운강석굴과 함께 중국의 3대 석굴로 꼽힌다.

용문석굴 안에는 자그마치 10만여개의 불상이 있다. 493년 북위가 대동으로부터 낙양으로 천도한 다음부터 석굴을 만들기 시작해 동위, 서위, 북제, 북주, 수, 당에 이르는 4세기에 걸쳐 용문석굴을 완성한 북위~초당시대의 불교석굴군이다.

이하의 양안에 있는 용문산과 향산의 암벽에는 1352개의 석굴이 1km나 뻗어 있고 그 속에 약 10만개에 이르는 불상이 있다. 이수하안 ‘이궐’이라고 하는 석회암 암산에 있으며 큰 동굴은 서산28호(북쪽에서 차례로 번호가 붙음)와 동산 7호, 동굴은 1352개, 불감은 785개 있다. 북위의 낙양 천도(494) 후 곧 조영이 개시됐으며 빈양삼동으로 대표되는 북위굴에는 운강석굴과 달리 탑묘굴이 없고 존상은 중국식 복제에 의해 상현좌가 발달했다. 초당기에 석굴조영이 다시 성해져 봉선사동의 비로자나불 대불은 용문 전체의 중심을 이룬다. 그러나 초당 말에는 서산 남단까지 개척하고 동안까지 미쳤으나 성당 이후는 쇠퇴했다.

용문석굴 건너편 향산의 백원에는 당나라 시인 백거이(772-846)의 묘가 있다.

그는 근처에 있는 향산사에서 죽었는데 묘소 뒤에 있는 조그만 야산에 올라가면 날씨가 좋은 날에는 동쪽으로 숭악(嵩岳)이 보인다.

▲낙양박물관

용문석굴을 둘러 본 후 낙양박물관을 들렀다.

낙양박물관은 시 중심 부근에 세워진 3층 건물의 낙양박물관은 낙양 주변에서 출토된 약 800점의 유물이 시대 순으로 전시돼 있다. 전체 박물관의 전시품은 2000점이며, 소장품은 약 5만점 정도 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 당삼채(唐三彩)다.

중국 당대에 발달한 도기로 독특한 삼채 유약을 사용한 것으로 주로 장안, 낙양의 귀족들의 장례용 명기로 제작돼 묘 등에 부장됐다. 도질의 소지에 화장을 한 다음 녹, 갈 ,황, 백의 연유로 화려하게 칠하였으며 때로는 코발트의 남유를 칠한 것도 있다. 기형은 용수호, 만년호, 반(盤), 완 외에 각종 인물상과 신상, 진묘수, 말, 낙타 등 다양하게 있다. 또한 당시의 생활상과 풍속, 서역풍의 의상 등도 당삼채를 통해 잘 나타내고 있다. 아마도 측천무후 때부터 출현해 후장의 풍습에 따라 크게 유행했으나, 안록산의 난 이후에는 별로 제작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삼채는 발해삼채, 요삼채, 송삼채 등과 페르시아 삼채에까지 그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에도 고려초기에 당삼채와 비슷한 기물이 번조됐으나 성행하지는 못했다. 당삼채는 19세기 말 시내 공사현장에서 대량으로 발견됐다.

지난 1998년 10월경 ‘중국낙양문물명품전’을 개최하기 위해 국립부여박물관과 부여군·중국 낙양박물관이 공동 주관하고, 중국의 낙양박물관·낙양시문물공작대·낙양고대예술관이 출품했으며 중국역사박물관과 하남성박물원이 자료를 제공했다. 당시 전시된 출품물은 중국 당나라 문화의 진수인 당삼채를 비롯, 도자기, 금속공예품, 석제조각품 등 90여점의 중국문화재를 선보였다. 이후 1999년12월20일 부여박물관과 낙양박물관은 국제문화교류협약을 체결한 것으로 보아 부여군·국립부여박물관과 낙양박물관과는 전에도 인연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제31회 목단문화축제 개막식 참관

부여군 대표단이 낙양을 방문한 주 핵심 중 하나인 제31회 목단문화축제 참관을 위해 낙양박물관에서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발길을 옮겼다.

오후 8시 신구가극원에서 이 낙양시장의 사회로 시작된 개막식에 각국의 대표단 등 2000여명이 참석했으며 특히 중국 국가부주석이 참석해 이전까지의 지역 문화축제행사에서 국가급 행사로 격상시키는 의미있는 행사의 발로였다.

‘모란문화축제’는 중국 하남성의 낙양시에서 1983년에 첫 목단문화축제를 개최된 후 올해로 벌써 31회의 축제가 개최됐다. 낙양의 목단문화축제는 매년 4월15일부터 25일까지 개최되고 제31회 목단문화축제는 지난 10일 개최됐다.

목단문화축제의 주인공인 ‘화중지화(花中之花), 화중지왕(花中之王)’이라 일컬어지는 모란꽃은 온화하면서도 고급스러우며 아름답고 고결하다.

낙양시는 주요한 모란꽃 발상지 중의 하나로서 이 곳의 모란꽃은 꽃송이가 크고, 색상이 화려하며 역사가 유구하다.

모란은 수나라 때부터 재배가 시작돼 당나라 때 급속하게 확산됐으며 현존하는 모란의 품종만도 350여종에 이른다.

송나라의 문인 구양순은 ‘낙양목단기’에서 ‘낙양의 흙은 꽃에 가장 어울려 모란이 세상에 제일이다’라고 극찬하고 있다.

또한 현대의 중국인들도 모란을 ‘꽃 중의 꽃’으로 꼽는다고 하니, 낙양의 모란꽃이 중국인들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것도 그리 이상할 것도 없어 보인다.

낙양의 모란꽃은 중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아서 낙양에서 목단문화축제가 열릴 때 즈음에는 해외의 많은 여행객들이 낙양에 방문하고 있다.

이렇듯 해마다 개최되는 목단문화축제는 낙양의 대표적인 브랜드로 성장했고 또 세계가 낙양을 이해하는 하나의 창구로서의 역할을 하게 됐다.

축제기간에는 대형 문예공연과, 꽃놀이, 서화, 사진전 등 다채로운 이벤트 행사와 모란품종개발에 관련된 각종 세미나, 무역 상담회 등이 펼쳐져 비즈니스 장으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제31회 목단문화축제 개막식 공연을 관람한 뒤 일행은 숙소로 돌아와 낙양에서의 일정에 대해 짬을 내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임화빈 부여군의회 의원은 “과거 역사와 문화가 상당히 발전했던 양 도시가 현세에 이르러 교류를 통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이고 이에 대한 교류증진의 연구가 필요하다”라고 피력했다.

다음날 11일 낙양시에서 정주공항까지 유 부주임과 정 과장(통역)이 배웅을 해 주었으며 정주공항에 도착해서는 다음에 만날 것을 기약하며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눴다. 이로서 부여군 대표단은 낙양 제31회 목단문화축제 참관과 아울러 양 도시간의 역사문화의 교류를 더욱 공고히 하는 뜻 깊은 일정을 모두 마쳤다.

▲이외의 낙양 역사문화 유적지

시간상 가 보지는 못 했지만 낙양에 있는 역사와 문화의 유적지를 알아보기로 했다.

먼저, 의자왕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흑치상지와 아들 흑치준의 묘가 있는 북망산은 낙양시 북쪽에 있는 작은 산 이름이다.

뤄양은 B.C 11세기에 주나라 성왕이 이곳에 왕성을 쌓은 이래 후한을 비롯한 서진·북위·후당 등 여러 나라의 도읍지로서 역사적으로 번창했던 곳이다. 그만큼 뤄양에는 많은 귀인·명사들이 살았으며, 이들이 죽은 뒤 대개 북망산에 묻히고 있어 이곳에는 한나라 이후의 역대 제왕과 귀인·명사들의 무덤이 많다.

이와 같은 연유로 어느 때부터 인가 북망산이라고 하면 무덤이 많은 곳,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의 대명사처럼 쓰이게 됐고, 지금도 ‘북망산천(北邙山川)’하면 무덤이 많은 곳,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 ‘북망산 가는 길’하면 사람의 죽음을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두 번째, 백마사는 낙양에서 동쪽으로 10km 되는 곳에 있는 중국 최초의 불교사원이다. 후한시대인 서기 68년에 세운 절이라고 알려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한나라 명제가 하루는 잠을 자다가 부처와 같은 형상의 황금으로 된 물체가 꿈에 나타나서 두 사람의 승려를 서역에 파견했고 그들이 얼마 후 인도의 고승 두 사람과 함께 불경을 흰말을 싣고 돌아왔고 그 후에 이 절을 짓고 백마사라고 했다고 한다.

이 절의 산문양쪽에는 인도에서 온 두 고승 가섭마등, 축법란의 묘가 있다. 이 절의 대웅전의 양쪽에는 원나라 때 세워진 18나한상이 있어 관광객들의 시선을 끈다. 절의 동쪽으로 가면·제운탑이라는 13층 석탑이 있다.

백마사는 중국제1고찰이며 세계에서도 저명한 불교 사찰로 남향으로 배치돼 있으며 총면적은 4만여㎡에 달한다. 백마사는 고색창연한 고건축군이 잘 보전돼 있으며 1961년 제1차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No 1-92), 1983년 한족지구불교전국중점사원으로 지정됐고 2001년 4A급 여유경구(관광경승지)가 됐다.

세 번째 관림은 낙양시에 위치한 관우 장군의 묘다. 관우는 공자와 함께 중국 2대 성인 하남성 낙양에 위치한 관림은 삼국지에 등장하는 관우의 수급이 묻힌 곳이다.

관우는 오나라 여몽의 계략에 빠져 목이 잘린다. 유비의 복수를 두려워한 오나라가 관우의 목을 위나라로 보내자 위나라의 조조가 관우의 목에 나무로 된 몸을 조각해 이 묘에 장사를 지내주었다. 중국에서 묘의 등급 순서는 분(墳)-총(塚)-릉(陵)-림(林)이며, 관우의 묘는 최고의 등급인 림이다. 관림은 중국에서 공자의 묘 공림과 함께 이림으로 칭해지는 곳으로 무예와 재물의 신으로 숭상받는 관우의 묘를 찾는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네 번째 시내 중앙에 걸쳐서 펼쳐지는 왕성공원은 주나라의 왕성 유적이었는데 본래 노동인민공원이라고 불렀다. 공원 안에는 은나라 때의 구정 복제품이 있다. 정(鼎)이란 천자의 상징물로서 두 개의 손잡이와 발이 셋 달린 솥을 말하는데, 높이 4m, 길이 9m 정도 되는 철로 만든 대형 솥이다. 그리고 공원 내에는 2개의 한대의 묘가 있는데, 전실과 후실에는 색채가 뛰어나고 예술성이 높은 해, 달, 별과 신선고사가 그려져 있다.

왕성공원은 또한 모란으로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데 일명 ‘모란화성(牡丹花城)’이라고 불릴 정도로 4월15일~25일 사이의 11일간은 모란축제가 열려 왕성공원을 중심으로 도시에는 모란꽃이 아름답게 핀다.

부여/윤용태기자 yyt690108@dailycc.net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