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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수의 히말라야를 가다

에베레스트 등정은 신께 감사해야 할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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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3.01.01 19:57
  • 기자명 By. 충청신문

-서두를 필요도 없고,절대 서두르면 안 되는 길,서두를 수도 없는 길

-“산이 좋아 여기 퓨모리에서 영원히 잠들다” 추모비 오랫동안 마음에 남을 것 같아…

 

 

 

 

 

 

 

 

 

 

 

 

 

 

-네팔 쿰부 트래킹

트레커들을 가이드 하는 오지 전문 여행사에 의하면 에베레스트BC로 가는 쿰부 지역 트레일은 안나푸르나 BC나 랑탕 트레킹 코스보다 거리가 길고 지대가 높아 평소 체력을 단련한 사람들도 최소 10~20% 정도는 중도에 포기하기 십상이라고 한다.

이번 쿰부트레킹은 모교인 충남고 50주년 에베레스트 등반대 응원겸 트레일 코스에서 오지 체험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제주에 올레길이 생긴 이후 우리나라에도 비로소 본격적인 걷기 열풍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걷기 예찬론자인 자카 라카리에르는 “걷는다는 것은 무엇보다 멈출 줄 안다는 것이고, 바라본다는 것이며 평소의 시간 개념과는 전혀 다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여유를 찾는 것이다.”고 말한다. 숲길이나 산길을 걸으면서 도시 생활 속에서 쉴 새 없이 치닫던 삶의 속도를 줄이고 자기의 인생을 바라보며 여유를 찾는다는 것은 정말 삶다운 삶을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네팔의 수도 카투만두에 착륙 전 비행기 창밖에 흰 눈에 덮인 히말라야산맥이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순식간에 내 몸 속으로 신선한 기운이 몰려들어 어느새 에너지가 충전되는 기분이 들었다.

무수한 설산 봉우리들을 보며 정말로 수많은 클라이머들을 홀릴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름 위로 솟아오른 높고 매혹적인 히말라야를 죽 훑어보며 그곳은 단순한 등산의 대상이 아니라, 티베트와 네팔 사람들의 마음 속의 성지라는 말이 사실이겠다 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히말라야는 신과 같은 경건한 존재로 다가왔다.

에베레스트와 로체 등 8000m급 고봉이 8개나 있는 히말라야의 나라 네팔에 대한 호기심 때문인지 7시간의 긴 비행 시간도 짧게만 느껴졌고, 도착한 카트만두 공항에서 현지인 가이드가 건네준 하얀 비단 스카프는 하와이 원주민이 건네준 알로에 목걸이를 연상시킬 정도로 단순한 환영 인사 이상의 감동으로 다가왔다.

오지 전문 여행사 측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번진 걷기 열풍으로 네팔 트레킹도 해마다 그 인기가 더해간다고 한다. 히말라야산맥의 5000m까지의 코스는 이미 레저 공간으로 변하고 있고, 8000m의 고산 등정도 조만간 그렇게 될 것이다. 특히 에베레스트는 지구 최고봉이라는 위상 때문에 모험 레저의 모형이라는 새로운 수식어가 붙어 버렸다.

자신만의 가치와 철학을 가지고 묵묵히 산을 오르는 등산의 세계가 이렇게 대중적 열풍에 휩싸이게 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으며 또 의외의 일이기도 했다.

어찌되었건 이전의 에베레스트는 전문 산악인들만의 영역이었지만, 이제는 어지간한 평범한 중년 남자들도 올라갈 수 있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루에 수십 명씩 정상에 올라가는 진기록이 쏟아질 정도로 이제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여러 가지 문제점과 비판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에베레스트 등정은 엄청난 고난과 인내 그리고 생사를 건 최고의 모험이자 도전이며 모든 산악인들의 꿈이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 세계의 지붕에 오른다는 것은 일생일대의 꿈의 실현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성취감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고 돌아 본 카트만두 시내는 악명 높은 매연의 도시를 실감하게 했다. 인구 200만의 이 도시는 다른 나라의 수도에 비하면 어림없이 작은 도시지만 그 복잡함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포장되지 않은 길에다가 중앙선 표지도 없는 좁은 도로를 왕복으로 오가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릭샤, 사람들로 인해 혼잡의 극치를 이루어 차안에 타고 있는 사람조차도 혼이 빠질 정도였다.

다음날 아침 에베레스트 트레킹 코스의 관문인 루크라 행 첫 비행기를 탔다. 20인승 작은 비행기지만 네팔 민속의상을 입은 고운 자태의 스튜어디스가 밝은 미소를 지으며 귀막이용 솜과 사탕을 건넨다. 네팔의 국내선 비행기 사고는 빈번하다고 할 정도로 자주 일어난다고 했다. 1955년 첫 사고이래, 비행기 사고 희생자는 지금까지 총 71번의 사고에 사망자 수가 600명 이상이라고 한다.

이윽고 비행기가 이륙하자 세계적 항공사진 작가 얀이 찍고 싶어할 정도로 아름다운 고산의 풍광들이 펼쳐진다. 프로펠러 소음조차 잊게 할 정도로 아름다운 산비탈의 녹색 밭, 작은 농가들, 장대한 설산 등이 파노라마를 이루며 이어지고 있었다. 불과 40분만에,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짧다는 절벽 바로 위 루크라의 활주로에 안전하게 착륙 시켜준 조종사에게 모두들 박수를 보냈다. 활주로 주변에 원주민들이 몇 명 서성이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우리 포터들이었다. 푸른 생명체라고는 이끼조차 보이지 않고 푸석거리는 암석 자갈 밑으로 차가운 얼음만 비치는 곳까지 우리 짐을 운반해 줄, 우리가 신세를 지고 전적으로 의지해야 할 사람들이었다.

에베레스트로 가는 길은 네팔 동북부 쿰부 지역에 위치하는데 네팔에서도 고봉들이 많은 곳이라 경관이 어느 지역보다 웅장하다는 평을 받는 곳이다. 계약된 포터들이 짐을 꾸려 옮겨간 후 우리 일행은 작은 식당에 가서 간단히 간식을 들었다. 식당은 비록 작고 번듯한 석조 건물들은 아니지만 깨끗하게 단장되어 있었고, 성의 있게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는데 서양인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특히 식사를 한국식으로 하기에 한국음식 조리법을 배운 네팔인 요리사를 특별히 채용해야 했고, 식재료와 연료는 물론 식기까지 챙겨 올라가야 했다.

이윽고 네팔에서 가장 야성적이라는 쿰부의 경관을 보며 길을 걷는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자연의 소리를 오케스트라라고 한다면 계곡의 물소리는 아마 관현악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빛나는 금속성 화음처럼 펼쳐지는 육중한 물소리가 숲 속 초입 초목 위까지 들려와 첫날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길가엔 네팔의 국화인 선홍색 랄리구라스가 피어있어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듯 했다. 설산에 피어난 이 아름다운 빛깔의 꽃들은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빨간색, 핑크색, 하얀색 등 다양한 색상을 가지고 있다는 이 아름다운 꽃이 히말라야의 설산과 어우러져 피어있는 광경은 마음을 저리게 할 정도였다.

해발 2600m의 팍딩으로 가는 길은 우리나라 둘레길을 걷는 것처럼 완만하고 평화로웠다. 두 발로 자연 속을 걸어가고 있는 이 순간이 바로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매일 매일이 단조로운 일상이지만 머릿속은 어지간히 복잡하게 얽혀 있는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이렇게 자연만을 바라보는 순간을 가져 보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른다.

칼라파타르라는 이름의 롯지(lodge)에서 산길 첫 여정의 짐을 풀었다. 이 동네 롯지들은 깨끗하고 시설이 좋았는데 우리가 묵은 롯지의 네팔인 주인은 여느 네팔 사람보다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이런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녀들을 미국 같은 곳으로 유학을 보낼 정도로 알부자가 많다고 한다.

화장실 역시 생각보다 깨끗하였다. 서양 사람들이 많이 오니 자연히 양변기가 설치되어있는데 물이 풍족하지 못해 바가지로 퍼 옮겨야 배수가 되었다. 오기 전 읽은 어떤 책에는 화장실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 대목도 나오는데, 그 책을 쓴 저자가 아마 70년대에 원정 온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유감스럽게도, 이번 트레킹 기간 중 첫째 날인 이 날만이 심신이 평화로운 날이었다. 다음 날부터는 고도를 점점 높여야 했고, 그에 따라 자연발생적으로 생기는 불편함 때문에 아름다운 히말라야의 경관을 감상하는 마음의 여유까지 서서히 잃게 되었다.-몬조, 조살레

트레킹 기간 내내,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포터들이 미소와 함께 차를 건네주며 아침 인사를 건네곤 했다. 그들의 미소 덕분에 매일 아침이 기분 좋게 시작되었다

히말라야의 몬조와 조살레로 이어지는 길에, 꽤 깊은 협곡에 놓여있는 줄사다리를 조심스럽게 건널 때 느껴지는 짜릿한 스릴 또한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양지바른 몬조의 산골마을을 지나가다가 문간에서 얼굴만 내밀다 숨어버리는 수줍은 동네 아이들을 보았다. 그들의 모습에서 초라한 외모가 아니라 푸근한 자연과 더불어 하나 되어 살고 있는 따뜻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포터들이 지고 가야할 짐의 무게는 한계가 20kg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들어보니 꿈쩍도 않는다. 이렇게 엄청난 무게의 짐을 메고 올라가는 포터들을 보면서 마음이 그리 편치만은 않았다. 남루한 옷차림과 허름한 샌들에, 무지막지할 정도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기 위해 어깨 힘만으로는 부족해 목의 힘까지도 의지하려 머리에 하얀 끈을 동여맨 그들의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했다. 그렇게 몇 시간씩 고산을 올라가야 하는 세월을 보내다보면 후에 신체적으로 큰 후유증이 남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먹고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너무나 심한 고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전혀 찡그림 없이 묵묵히 짐을 메고 오르는 그 와중에도 옴 마니 반메 훔을 외운다. 그렇다고 이들의 일상을 순례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만감이 교차했다. 히말라야 고산에서 태어나 본의 아니게 야크나 다닐 외길에서 하루에 10불 남짓을 받으며 이런 고행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다니 그들이 의지하는 신이 너무나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는 것을 보면 광활한 히말라야가 그들에게 마법 같은 낙천적 품성을 준 때문일까...

대부분의 트레커들이 히말라야에 와서 꽤 높은 고도까지 올라갈 수 있는 것은 순전히 네팔인 포터들의 도움 덕분이다.

또한 에베레스트 등 고산을 등정하려는 클라이머들에게도 셰르파의 도움은 결정적이다. 등반 루트를 개척하려면 너무나 많은 체력이 소모되기 때문에 이런 일 대부분을 셰르파의 도움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셰르파의 공을 언급하지 않고는, 그 누구도 세계적인 산악인이라는 말을 듣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네팔 정부는 히말라야 관광과 등반의 인기가 치솟자 돈벌이에만 급급한 나머지 가장 중요한 안전 문제를 도외시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특히 에베레스트에 등정하려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제한 없이 대폭적인 허가를 내주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안전을 도외시함으로써 끔찍한 사고가 자주 발생하고 그로 말미암아 숭고하고 성스러워야 할 히말라야를 비극의 공간으로 만드는 일이 잦아진 것이다.

 

 

 

 

 

 

 

 

 

 

 

 

 

 

<남체 바살로>

아침, 숙소에서부터 2시간 여를 걸으니 사마르카타 국립공원 입구가 나온다. 여기에서 남체 바자르로 가는 길은 자작나무가 울창하고 깊은 협곡이 여럿 있었다. 일정에 따르면 쿰부의 중심지이자 트레킹 코스 중 가장 큰 마을인 남체에서 일박을 하게 되어있었다.

갑자기 고도가 높아진 탓도 있지만 남체로 오르는 막바지 길의 경사가 가팔라서인지 몸이 무척이나 무겁고 심한 피로감을 느낀다. 이제는 산 속의 나무와 꽃 그리고 새들이 주는 그 어떤 향기와 소리도 느끼지 못할 지경이다. 계곡의 물소리는 더욱 장엄하게 산 속을 울리고 신선함으로 세상을 채워주고 있건만 머릿속은 점점 더 어지러워지고 있었다.

고도가 3400m를 넘어서는 데다 히말라야에 와서 처음으로 가파른 경사면을 걷다보니 우보 걸음으로 10걸음에 1분 정도는 쉬면서 숨을 고르고 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털썩 주저앉을 정도였다.

산비탈을 오르고 올라도 제자리걸음인 것 같다. 하늘 끝자락도 안보이고 초록색 녹음만 보이는 것이 아직도 고갯마루까지는 먼 모양이다. 굽은 길을 돌아설 때마다 지금 오른 고개보다 더 높은 고개가 나타날까 더럭 겁이 난다.

등반 첫날, 남체로 가는 오르막이 특히 고비라고 하던데 바로 이곳인 모양이다.

희박한 공기 속에서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며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마음껏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생각해 본다. 공기의 고마움을 일상 속에서 언제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았던가 싶다.

도착한 마을은 규모가 꽤 큰 남체 바살로였다.

다음날 오전 남체에서 상보체로 올라가는 길에 헬리콥터 착륙장이 보인다. 수시로 상공에 뜨는 헬리콥터를 보면 물자 수송도 하겠지만 위급 상황도 매일 벌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헬리콥터 수송 경비는 상당히 비싸다. 베이스캠프에서 카트만두까지 맨 처음 호출한 게스트는 1000만원 가까운 경비를 지불해야 하고, 같은 헬기에 탑승하게 될 두 번째 게스트는 가격이 그 절반으로 떨어지는 요금 체계로 수송을 한다고 했다.

해발 3900m의 조망처로 올라가며 본 남체 마을은 쿰부 지역에서 가장 큰 마을답게 오밀조밀한 집들이 타원형으로 밀집되어 있어 멀리 산 위에서 보니 한 폭의 그림 같은 모습이었다. 남체는 에베레스트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마을 중 가장 큰 곳이라서 인지 시골장도 열리고 곳곳에 새로 짓는 롯지도 보인다.

건축자재를 메고 험한 산길을 올라가는 네팔인 고산족들을 보면 한 발짝 떼어놓으면서도 숨을 헐떡거리는 우리 같은 사람들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기이함이 느껴진다. 고달픈 삶이지만 그 삶에 익숙해지면서 그렇게 체력이 단련된다면 삶의 어떤 파도 앞에서도 무서울 것이 없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2시간 정도를 헐떡이며 올라간 곳은 상보체였다. 에베레스트의 장관이 잘 보이는 조망처 였다.

우아한 자태의 아마다블람과 멀리 검고 둔중하게 솟아있는 에베레스트의 상봉을 바라보며 그곳은 속물적인 영웅심으로 손쉬운 자연 정복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결코 유린당해서는 안 될 신성한 곳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외선이 강하게 내리쬐는 호텔 발코니에서 장엄한 설산들을 바라보며 깨달았다. 에베레스트 등정은 신이 허락하는 순간에나 달성할 수 있는 위업이며, 그 앞에 엎드려 신께 감사해야 할 산이라는 것을.

 

 

 

 

 

 

 

 

 

 

 

 

 

 

<디보체>

이날 4000m도 안 되는 높이에서 고산 증세로 뒤통수를 맞고 나니, 돈만 있으면 대충 에베레스트도 오를 수 있다는 말은 고산에 대한 오해에서 나온 어림도 없는 뜬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걸으면서 지금 저 산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움이다.

그리고 무한함과 잇닿은 깊은 산 속을 걷는 것은 더욱 경외감에 빠져드는 일이다. 자연의 그런 위대함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포함한 모든 것들은 점점 작아지며 결국은 사라져 버림을 느끼게 된다.

이런 고산에서는 삶과 죽음이 종이 한 장 차이일 것이라는 생각이 스치곤 하는데 일리 있는 말이다. 작년에 연세가 꽤 드신 한국 분이 목적지인 칼라파타르까지 무사히 올라갔다가 고락셉으로 하산한 후 잠을 자다가 사망했다고 한다. 아마 무리를 했던 게 원인이겠지만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간혹 생긴다고 한다.

아직도 걸어야 할 까마득히 먼 산길을 바라보면서 숨을 헐떡이며 중도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주저앉을 때는 저승길로 한 발 들어섰다가 다시 이승으로 돌아서는 듯한 느낌마저 들기도 한다. 정신도 가물가물하지만 이러다가 털썩 쓰러지면 한 순간에 생사가 갈릴 수 있다는 생각에 일순간 가족들에게 할 말은 다 하고 왔는가 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치기도 한다.

다음 날은 풍기텡가에서 탕보체의 급경사를 오르기 시작했는데, 이 지점이 이번 트레킹의 고비였다. 햇볕이 내리쬐는 맑고 아름다운 날씨가 지금까지 지속되는 것을 보면, 5월 초순이 몬순에 들어가기 전 트레킹의 최고 적기임을 실감하게 된다. 히말라야 트레킹은 가을에 더 인기가 높지만, 진면목을 경험하려면 겨울에 찾아와야 한다고 한다. 정상 등반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몬순에 들어가기 전인 5월 초에서 5월 중순까지가 시즌 적기이므로 베이스 캠프는 지금 북새통이라고 했다.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아름다운 이곳에서 더 이상 올라가지 말고 그냥 머물러 있어도 좋을 텐데, 사람들은 왜 굳이 정상까지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정상이 거기 있기에 오르는 것일까? 여기서도 히말라야는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것인데...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곳까지 이르러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의 욕망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가파른 경사로 알려진 탕보체 가는 길. 나는 아예 야크 꽁무니를 따라가기로 했다.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걷는 것도 일정치 않은 내 걷기 페이스로는 효과가 없었기에 고민 끝에 이번에는 고산 등반의 경지에 오른 야크의 꼬리라도 잡고 가면 오늘의 이 고비를 넘길 수 있는 나름 지혜로운 방법일 것 같아 줄기차게 야크 뒤를 따라갔다.

마리 당 100kg 정도 되는 트레커들의 짐을 등에 진 야크 몇 마리를 몰고 좁고 거친 낭떠러지 길을 올라 5000m 이상까지 가야하는 그 길은 그야말로 힘든 노정이었다. 가끔 지쳐 서 있는 야크에게 돌을 던지고 멋진 기합소리로 야크를 몰고 가는 17세 정도 된 이 처녀의 모습 또한 멋져 보였다. 그녀가 이어가야 할 이 고되고 힘든 생업의 길이 거룩하게까지 여겨졌다.

탕보체로 가는 길은 깎아지른 정도는 아니지만 중천에 떠있는 구름을 벗 삼아 깊은 계곡 산중의 구비를 돌고 돌아 가야하는 외로운 길이었다. 뒤를 바라보거나 머리 한번 드는 것조차 힘이 들어 계속 야크 엉덩이만 바라보며 걷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주위가 너무나 아름답다. 이토록 멋진 정경을 감상하지 못하고 허덕이며 가야되다니 강하지 못한 체력이 원망스럽다.

가끔씩 들리는 처녀의 소몰이 소리 외에는 주위가 적막하다. 일행들은 다 어디로 흩어져 가고 있는지 앞뒤 뽀얀 흙길 위로 무심한 시간이 흐르고 있다. 정면으로 에베레스트를 비롯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설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탕보체로 가는 길은 시간의 흐름마저 묘하게 느껴지는 그런 길이었다.

도착한 디보체의 롯지는 방 창문을 열면 고혹적인 자작나무 숲이 눈앞으로 펼쳐져 있어 시적인 영감이 솟아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앞으로는 고도가 올라갈수록 푸른 나무는 점점 보기 힘들어지는 대신 하얀 산과 회색 암석만을 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초목이 주는 향기, 수액의 냄새, 잎에서 뿜어내는 신선한 기운을 깊이 들이마셨다. 숲이 많이 우거지지 않아서인지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에서처럼 두 갈래 길이 선명하게 보인다. 여전히 저 멀리에는 설산 봉우리들이 우주의 중심인양 웅장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딩보체, 로부체, 고락셉>

뷔유 포인트 내려온 다음날 에베레스트 하이웨이로 불리는 길을 걸어 풍기텡기라는 마을까지 갔다.

길 아래에는 마치 입체적으로 보이는 깊숙하게 다양한 중생 식물군들이 서식하고, 만년설과 빙하가 떠내려 오면서 엄청난 굉음과 함께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낭떠러지 협곡을 가로지르는 구름다리를 지나면, 푸른빛 도는 엷은 안개 자욱 같은 실루엣이 소멸되지 않고, 오로지 흰빛이 찬란한 히말라야 산맥의 또 다른 녹색 변경선으로 다가온다.

참으로 절묘한 조화로, 대 자연이 가진 경지에 외경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길은 걸으면 걸을수록, 높이 올라서면 올라설수록 원시적 토착의 세계로 회귀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면서, 자신의 존재가 미미해질수록 멀리 떠나온 자에게는 필연적으로 그리움이 피어오른다.

점심때 녹두죽과 쌀밥, 푸른 채소와 감자등 정성껏 만들어 나온 네팔 음식을 음미하였다.

네팔식인 샥빠와 달밧 떨커리 라는 음식은 우리 입맛에 딱 떨어지게 맞는 그야말로 웰빙 음식이다.

언젠가 먹어보았던 옛날 먹거리 같은 향수를 자극하는 후덕함 으로 다가온다.

5월의 첫째 날, 히말라야의 투명한 대기 속에서 하오의 느슨한 길을 여유 있게 걷는 야크와 함께 탱보체로 가는 시간은 특별한 야망이 없는 바람결 속에 나부끼는 여정 같았다.

이 가파른 길은 참으로 육신은 힘이 들었지만 오히려 희박한 산소와 저기압 속에서, 어쩌면 육신이 순식간에 내 던지게 될 수 있다는 평온함마저 느껴진다.

앞뒤에 일행이 안보이고 끝없이 이어지는 마치 구름 속 길 을 바라보며 순간 진지한 선의 세계 속에 고립 된 듯한 고독이 엄습한다.

서두를 필요도 없고, 절대 서두르면 안 되는 길.

서두를 수도 없는 길,

이 곳 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곳이다.

경사진 좁은 커브 길에 만난 반대쪽 야크 몰이꾼이 소리를 지르기에 길을 피해준다.

몰이꾼의 목소리가 뽀얗게 일어난 먼지 구름 속에 야크 목에 찬 종소리와 어우러져 교차한다.

속죄자 인지, 순례자 인지, 자유인 인지 정체를 모를 이 가난한 사람들은, 대부분 휴대폰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인도 풍 가요를 흥얼거리는 이들에게, 행복한 삶을 더 해주는 휴대폰은 분명 예술품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고 올라, 힘들게 5140m의 고락셉에 도착했는데 베이스 캠프 바로 아래인 이곳이, 나의 여정의 종점이 되었다.

저녁에 잠을 이루지 못해 숙소 밖에 나오니 기온이 상당히 떨어진 추운 지대였다.

렌턴을 끄니 밤 하늘에 별 이 무성하다.

달빛이 창문사이로, 차거운 복도에 누워 고단한 심신을 달래며 잠든 포터들의 검은 침낭 위에도 비추고 있었다.

지금 여기는 남회귀선 북회귀선 어느 방향의 밤 하늘인지...

절대적 정적 속에 바로 옆에 우뚝 서있는 7000m 퓨모리의 위용이 척박한 이곳 분위기에 더욱 장엄하게 보인다.

눈발이 내리고 이제 생명체라고는 구루터기도 볼 수 없는 얼음섞인 갈색의 너덜 지대는, 남미 안데스에서 본, 어느 구석진 지형의 모습보다 황량하고 을씨년스러웠다.

이번 여정 중 “산이 좋아 여기 퓨모리 에서 영원히 잠들다”고 새겨진 28세, 25세의 한국 두 젊은이의 영혼을 기리는 추모비가 오랫동안 마음에 남을 것 같다.

나는 오들거리는 추위를 느끼며 고락셉 으로 가는 길목 허연 빙판길에서, 자아를 해방하려 눈부시게 빛나는 히말라야의 광휘를 받으며 힘차게 나르는 이카루소를 그려 보았다.

“자유, 오로지 자유를 위해 떠났다. 그래 어쩌란 말이냐. 제기럴” 하는 젊은이들의 소리가 전에 맴돌았다.

그들의 산행이 항구적인 기도일수 있지 않느냐고 갈구 하고 싶은 마음이 혹독하게 드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신에게 광대한 생명의 지평선을 그 젊은이들에게 이어달라는 간절함 이었다.

/강명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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