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태고적부터 살아오면서 남과 여는 시대 흐름속에 인격, 가치, 위상의 변화를 가져왔다.
남성은 인간이라는 한 개체가 성립된 후 진화를 거듭하면서 근대까지 남성우월주의가 동서를 막론하고 이어져 왔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막을 수 없는 게 현실.
우리나라를 보더라도 과거 고조선이 세워지고 조선후기까지 남성의 우월은 지속성을 보여 왔으며 근대사회에 이르러 평등이라는 미명에 여성의 지위도 싹을 틔워 왔다.
현재는 각 분야에서 여성의 역할론이 대두되고 있고 실제로 사회의 한 단면에서는 큰 역할을 한다.
남녀평등을 넘어 여성 상위시대로 흘러가는 느낌마저 든다.
최근엔 국가의 최고 수장인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각 당의 예비후보를 뽑는 경선에서 새누리당은 박근혜 후보를 헌정사상 최초로 여성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남여의 위상 변화에 못지않게 국가 구성원의 지위도 변화를 가져 왔다.
나라가 생긴 후 조선이 멸망하기까지 왕을 중심으로 군과 관은 대등한 입장에서 정치적 우위를 선점하려 다툼을 이어왔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쳐 동족상잔의 6·25 전쟁을 치르고 군이 중요하다고 해 군관민(軍官民)이라는 말을 많이 써 왔으나, 민주화의 시대적 운명 앞에 역풍을 맞고 지금은 민관군(民官軍)으로 역전됐다.
그만큼 시대의 흐름은 누구도 막지 못하는 불가항력의 천리(天理)인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무의식중에 자기중심적으로 남존여비(男尊女卑), 관존민비(官尊民卑)라는 구시대적 잔존인 구태의연한 폐습이 내재돼 있는 게 사실이다. 더 보탠다면 최근 사회에 부각되고 있는 외국인과 결혼해 가정을 꾸며 살아가는 다문화가정에 대한 아존여비(我尊汝卑)의 눈초리도 있다. 하지만 바꿔야 한다. 그들도 우리 사회의 한줄기이고 한뿌리의 태동이기 때문이다.
엊그제 한 주민이 부여군청에서 받은 공문에 ‘김OO(女)’라는 문구가 눈에 띄어 새삼 시대 역행에 질문을 던지며 느낌이 낯설기만 하다.
공문은 공공의 기관에서 1명 또는 그 이상의 다수, 해당 당사자에게 보내는 정식문건이다. 이에 해당 당사자가 제삼자에게 보여주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공문서에 “꼭 ‘女’라는 것을 붙여야 하나”에 정신이 혼란스럽다.
보편적 차원에서 공평무사함을 갖춰야 할 공공의 목적을 둔 부여군청이 공문에 ‘女’를 붙인 것은 현 시대를 잘 못 인식하는 인순(因循)의 표본이다.
부여군청 공직사회가 시대인식에 거세개탁(擧世皆濁)한 것이 아닌가, 개두환면(改頭換面)한 것은 아닌가, 시대맞춤법을 알아야 한다.
/윤용태 부여주재